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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 카를로 로벨리의 기묘하고 아름다운 양자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23년 12월
평점 :
양자역학에 관한 책을 전에 읽어 보긴 했는데 도무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이번에도 역시 미궁에서 헤메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용어들의 반복적인 세례를 받으면서 지난번 보다는 조금 부드럽게 읽혀졌다.
바로 옆에서 조근조근 이야기하듯 설명하는 작가의 친절한 안내도 끝까지 읽는데 한 몫 했다.
책의 구성은 모두 7장으로 되어있고 1장은 양자역학의 문을 연 주요 인물들의 역할과 3가지 핵심 개념인 관찰과 확률 그리고 입자성에 관하여 설명한다.
2장은 중첩에 관한 이론으로 유명한 예화 '슈뢰딩거의 고양이' 가 등장한다.
양자 중첩이란 서로 모순되는 두가지 속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안톤 차일링거의 실험을 통해 중첩과 양자간섭 그리고 관측이 간섭을 사라지게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3장 이후는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양자학의 '관계론적' 설명이 나온다.
그것은 물리적 대상이 다른 물리적 대상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연구하는 것인데 상호작용에 주안점을 두었다.
4장은 상호작용의 핵심인 얽힘에 대한 이야기다.
얽힘이란 유대관계에 있는 두 사람 또는 두 사물이 미리 사전에 약속을 하거나 연락을 하지 않아도 어떤 연관된 특성을 계속 유지하는 현상이다. 여기서 저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두 대상을 관찰하고 연결하는 제3자이다. 그래서 얽힘은 둘이 아니라 셋이라고 한다.
5장에서는 양자역학의 정신적 모체인에른스트 마흐의 이야기와 관계가 대상보다 우선한다는 구조적 실재론 등 양자론과 관련있는 철학적인 이야기들이 나온다.
마흐는 철학의 중심이었던 주체를 경험자체로 관심의 초점을 옮겨 감각의 중요성을 일깨웠고 '관찰가능한 것'에만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한 하이젠베르크의 착상에 기점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마흐 역시 나중에는 자기만의 형이상학을 만들었다고 비판하며
양자를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철학자들의 텍스트를 뒤지고 다니다가 마침내 나가르주나를 만나게 된다. 나가르주나의 핵심 메시지는 '다른 어떤 것과도 무관하게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였다.
저자는 이 말에 매료되었고 아마 책 제목도 여기에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6장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연에게는 해결된 문제다' 라는 제목부터 난감하다. 6장은 실제로 저자가 피력하고 싶은 메시지다. 작가의 양자학에 대한 지식과 철학이 이 장에 집약되어 있다.
실체에 대한 정신적인 세계와 물리적인 세계의 관련성에 대하여 논하는데 이야기를 관계 중심으로 풀어간다.
7장은 6장의 연장선에 있다. 결론을 내리려고 따로 자리를 마련했는데 명확하게 구체적인 덩어리가 없다.
뭔가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연기처럼 잡히는게 없다. 그래서 세익스피어의 시로 느낌을 전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간략한 책의 요약이다.
작가는 대학에서 전공을 선택 할 때 오래 망설이다 마지막 순간에 물리학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유로는 세계의 실재 본질을 알고 싶은 호기심 때문이라고 했다.
그동안 실체를 찾는 일은 주로 철학이 맡아왔다. 하지만 과학 역시 세계의 원리를 찾는다는 측면서 궁극적으로는 철학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작가는 본문에서 철학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제목만을 보더라도 과학이 아니라 철학 냄새가 물씬 풍긴다.사실 내용도 과학인지 철학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철학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작가는 궁극적으로 철학을 과학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과학주의의 본색을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나가르주나의 '공' 사상을 논하면서 자기는 미천한 기계공이라고 한 발 물러서기도 한다.
애시당초 작가는 정신적인 현상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양자학을 연구하면서 물리적인 현상만으로는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정신세계도 넘보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나가르주나를 만났던 것이다.
하지만 과학자로서 정신세계의 힘을 빌린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여기에서 창안한 것이 네트워크다. 세계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함으로서 정신의 역할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는 오직 대상과 대상 사이의 관계성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처음에는 과학의 문으로 들어간 것 같은데 나올 때는 철학의 문으로 나온 듯한 느낌을 준다
책의 부제처럼 기묘하고 아름다운 양자 물리학이었다.
이 서평은 출판사 서평행사에 참여하여 제공받은 책으로 자유롭게 작성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