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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라트 산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3년 11월
평점 :
아라라트 산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홍수물이 빠지면서 머물렀던 지명이다.
저자가 아라라트 산을 시집 제목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아서 뭐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몇가지 추측해 볼 수는 있다.
첫째로, 이번 시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 가족들이다. 이모와 조카를 더 넘어가지 않는다.
마치 세상이 그들만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마찬가지로 홍수 직 후 세상에는 아라라트 산에 정착한 노아를 포함한 8명의 가족 뿐이 없었다.
둘째로, 글릭의 시들은 죽음들이 많이 나오고 무덤이라는 단어도 종종 등장한다.
아라라트 산은 상징적으로 무덤의 봉분이라고 볼 수 있다. 노아 가족외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죽은 무덤 위에 우뚝 솟은 봉분이다.
셋째로 아라라트 산은 죽음위에 세워진 것이지만 노아의 가족에게 있어서는 희망이며 구원이다.
글릭의 시가 시종일관 죽음의 그림자가 서성거리지만 결국은 극복이며 도약이고 승화였던 것이다
지난번에 읽었던 글릭의 시 [내려오는 모습]에서 느꼈던 암울한 분위기는 [아라라트 산]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조금 밝아지는 경향이 있고 죽음이라는 단어도 줄어든다.
그러다가 다음 시집[야생 붓꽃]에 이르러야 비로소 승화되어 꽃으로 피어난다.
시집 [아라라트 산] 마지막 시에서 그녀는 " 오래전 나는 상처를 입었다. 나는 살았다. 복수하려고 아버지에게... 어린시절 나는, 고통이란 내가 사랑받지 못했다는 뜻이라 생각했다 그건 내가 사랑했다는 뜻이었다" <최초의 기억>
시인은 이렇게 자기의 전 생애를 온전히 수용한 후 다음 시집 [야생 붓꽃] 첫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내 고통의 끝자락에 문이 하나 있었어.
...그리고는 끝이 났지... 내 생명의 한가운데서 거대한 물줄기가 솟아났네. 하늘빛 바닷물에 깊고 푸른 그림자들이. <야생 붓꽃>
작가의 치유 행진은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어머니를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동생을 수용하고 이모와 조카 그리고 할머니까지 품을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간다.
이 과정은 이 후 14번째 시집까지 계속 이어질거라고 추정해 본다.
글릭은 시들은 대체로 감정의 기복이 없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죽음이 친구처럼 편하게 왕래하고 기쁨 또한 극적이지 않다.
미국의 현대문단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답게 그녀의 시들은 서정미가 넘친다.
아라라트산에서 어둡고 느리게 전개되는 서정미는 야생 붓꽃에서는 밝고 경쾌하게 진행된다.
상처는 반드시 애도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완전한 치유에 도달할 수 있다.
삶에 상처를 입었거나 마음의 질고로 고통 중에 있는 독자라면 아라라트산으로 순례의 길을 떠나봄이 어떠신지.
이 서평은 출판사 서평행사에 참여하여 제공받은 책으로 자의적으로 작성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