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오는 모습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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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어렵다는 것은 아마 대부분의 생각일 것이다. 게다가 외국시라면 난해함은 더 크게 다가온다.

이 책을 알기 전까지 루이즈 글릭이란 인물은 전혀 들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미국에서는 현대 문단을 대표하는 서정시인이고, 2020년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다.

그녀는 모두 14권의 시집을 발표했고 [내려오는 모습]은 세번째 작품이다.

시집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너무나 평이해서 더 어렵게 느껴졌다.
더구나 처음 접하는 작가의 시 세계는 다른 행성을 방문한 것처럼 낯설고 모호했다.
물론 시가 모호함을 무기로 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녀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눈가리고 길을 가는 듯 했다.

막연히 떠오르는 이미지는 뭉크의 그림들이었다.
뭉크의 작품들에서 죽음의 냄새가 나듯 루이즈 글릭 시에도 죽음의 그림자가 서성인다.

" ...아침이면, 텅 빈 들판에서,
육신은 호출되기를 기다린다.
넋은 그 옆, 작은 바위 위에 앉아있고
다시 형태를 갖추려고 오는 것은 없다..."  < 정원 중에서 >

하지만 그녀의 시는 암울함과 공포에 머무르지 않고 또 다른 층 위로 도약한다.

"...무의미한 갈색들과 녹색들에서 마침내 하느님이 일어섰으니, 그 분 커다란 그림자가
그 분 자녀들의 잠든 몸에 컴컴히 드리워지고 그분은 천상으로 뛰어 올랐다.

분명, 너무너무 아름다웠을거야
그 처음에,
하늘에서 바라보는 지구" <애가 중에서>

작가는 카톨릭 신자였지만 시 세계는 신앙에 갇혀 있지 않다. 정신세계는 오히려 자연에 귀의 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내려온다' 라는 말은 다른 차원이나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되고 '올라간다' 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올라갔던 것이 다시 내려온다라고 볼 수도 있다.

작가는 이 두개의 세계를 하나의 연장선에 놓고 삶의 공포와 불안 승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뭉크와 마찬가지로 루이즈 글릭 역시 가족 트라우마가 있다.
고통에는 뜻이 있고, 아픈만큼 성장한다는 이야기처럼 어린시절 참혹한 경험들이 위대한 작품들로 다시 태어나는 역사를 이 시집을 통해 새삼 느낀다.

작가의 무궁한 시 세계를 너무 협소한 틀안에 가두어 놓은 느낌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좀 더 묵상의 시간을 갖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앞으로 서평해야 할 책 그녀가 1990년에 발표한 시집, [ 아라아트산]이 대기 중에 있어서 그때 좀 더 깊이 연구하려고 한다.

이 서평은 출판사 서평행사에 참여하여 제공받은 책으로 자의적으로  작성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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