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시가 필요한 시간
장석주 지음 / 나무생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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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두를 읽으면서 칠레의 국민 시인 파블루 네루다가 떠올랐는데 역시나 후반부에 네루다가 등장했다.

저자는 네루다의 정신세계와 닮았다. 아니 시인들은 모두 시와의 인연을 비슷하게 이야기 한다.

시는 행운의 여신 같고, 바람 같다. 바람은 스스로 불고 싶을 때 불고 행운의 여신 또한 가고 싶은 사람에게 간다. 작가의 경우 사춘기 때 시가 아무 사전 고지도 없이 우연의 흐름을 타고 자기안으로 쑥 들어왔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나는 시와의 조우를 줄탁동시에 비유하고 싶다. 내가 간절히 시를 찾는 것과 시가 오는 것은 같은 것이다.
시는 양자의 세계처럼 연결되어 있고 평행우주처럼 동시적이다.

시의 탄생은 시를 향한 나의 두드림과 시의 응답에서 빚어진다.
나와 시의 충돌로 내가 세상으로 나올 때 시는 내 안으로 쑥 들어온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시 윤희상의 <장 닭>을 보면 거울 속 장 닭이 어떻게 밖으로 나오고 밖에 있던 장닭이 어떻게 거울 속으로 들어가는지 볼 수 있다.

거울의 상징적 인용은 이원의 시 <목소리들> 에서도 보 수 있다." 나, 거울에서 막 나오는 중,... 너, 거울에서 이미 빠져 나온"

저자는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해체시키고 차이와 반복으로 자신의 세계를 열어 간다.
신영배 작가의 <휘어지는 비>에 나오는 '물울'이라는 단어도 그 의미를 특정화하면 오히려 더 모호해진다고 하며 다양한 의미를 반복적으로 생성시키며 차이를 만들어 낸다.

" 시인들은 항상 다르게 보고, 다른 것을 들으라는 정언적 명령의 세계에 속한다. 그리하여 같은 것을 보면서 다른 시각으로 보고, 같은 것을 들으면서 다른 귀로 들으며 같은 목소리에서 새로운 것을 듣는다" <p146>

시가 입자같이 명확하지 인지되지 않고 파동처럼 흘러 다니듯이 저자가 시를 통해 바라보는 인류애적 세계관은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차이와 반복을 통해 이상의 공간에서 끊임없이 배회한다.

"사전에서 모든 단어가 다 날아가 버린 그 밤에도 나란히 신발을 벗어놓고 의자 앞에 조용히 서 있는 파란 번개 같은 그 순간에도 또 희망이란 말은 간신히 남아 그 희망이라는 말 때문에 다 놓아버리지도 못 한다" <p21)

이 책에 등장하는 스물 아홉편의 시들은 저자가 관습적 이해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해체시킨 결과  더욱 알아보기가 힘들어 졌다.
안개속 나무가 사람 같기도하고 귀신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처럼 시들은 일정한 형상을 잃어버렸다.

" 시인은 그 아이를 두고 너는 태생이 안개란다. 미지로부터 와서  등불나방처럼 미지를 휘저으며 미지를 향해 나아간다" <p159>

시가 매력적인 것은 보는 각도마다 다르고 볼 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물 아홉 시인들로부터 한 편씩 선정한 글들을 양자학과 현대프랑스 철학으로 빚어진 틀을 통과시면서 해체시켜 버리고 공식이나 원칙없이 자신에 입맛에 맞는 방식으로 맞추기를
요구한다.

삶이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지금 이 퍼즐이 필요한 시간이다.

이 책을 집어든 독자들은 저자가 벌여놓은 퍼즐놀이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 서평은 출판사 서평행사에 참여하여 제공받은 책으로 자의적으로  작성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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