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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의 햇빛 일기
이해인 지음 / 열림원 / 2023년 10월
평점 :
어떤 이가 유명한 화가에게 그림을 주문하자 화가가 10분만에 그려주고 고액을 요구했다. 주문자가 왜 이리 비싸냐고 따지자 화가 왈 '이 그림은 30년동안 그린 그림이다' 라고 말했다.
이해인의 이번 시집을 보면서 떠올랐던 일화다
이번 책에 수록된 시들은 늦가을 감나무에 매달린 감들처럼 툭하고 건드려 우두둑 떨어진 것들을 주워 담은 것 처럼 너무 쉽게 쓰여진 것 같다.
하지만 이 시들이 익는데 까지는 30년이 훨씬 넘었다.
젊은 시절 1983년의 시<내가 오늘은 반달로 떠도> 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 손 시린 나목의 가지 끝에
홀로 앉은 바람 같은
목숨의 빛깔
그대의 빈 하늘 위에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차오르는 빛.... "
여기에서 빛은 푸릇푸릇하고 생기가 넘친다.
그런데 삶의 긴 여정을 지나면서 그녀의 시 세계는 따스하고 온화한 햇빛으로 변화 되었다.
"... 햇빛으로
얼굴을 씻고
손을 씻고
마음을 씻고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도 내게
햇빛으로
웃어 줄 것이라
미리미리 행복 합니다" < 햇빛 일기2 >
그리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면서 작가의 영혼은 더 깊고 사려깊은 존재로 거듭났다.
" ... 진정한 아름다운 삶이란
떨어져 내리는 아픔을
끝까지 견뎌내는 겸손이라고.... " <비가 전하는 말>
더불어 그녀의 시들도 새 옷을 입었다.
연륜이 차고 인생의 질고를 겪으면서 시들은 가볍고 편하며 담담해졌다.
"....글도 싱겁게 쓰고
말도 싱겁게 하고
용서도 싱겁게 하네 ....
극적인 재미는 덜해도
담백해서 오래가는
평화가 오네" < 싱겁게 더 싱겁게 >
이번 시집에는 작가가 암과 투병하며 보낸 고통의 순간들을 기쁨과 슬픔 그리고 감사로 승화한 시들이 많이 들어 있다.
시를 깊이 묵상하다보면 작가가 겪었던 아픔과 고통에 동참하게 되고 고단한 순간들을 어떻게 품고 극복했는지 함께 경험 할 수 있다.
이해인 수녀는 아낌없이 주는 사랑의 나무이다. 인생의 계절마다 그녀는 아름다운 삶의 열매들을 우리와 함께 나누었다.
이번 겨울, 그녀가 베푸는 나무 밑둥에 앉아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그녀의 시들을 음미해 보면 어떨까.
이 서평은 출판사 서평행사에 참여하여 제공받은 책으로 자유롭게 작성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