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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중의 정원
김다은 지음 / 무블출판사 / 2023년 9월
평점 :
역사 드라마가 매력이 있듯이 역사 소설 역시 머리속에 있는 역사적 인물과 사건들을 특별한 이야기 공간으로 소환시킨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덕중의 정원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계유정란과 연관하여 궁중에서 벌어진 모함과 암투들을 소설로 만든 작품이다.
역사적 이야기를 단순히 풀어 쓰기만 한다면 소설로서의 가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실제 사건 보다는 사건과 사건 사이의 기록되지 않은 공간을 어떻게 창조하느냐가 작품의 가치를 결정한다. 그만큼 작가는 빈 공간을 채울 기발한 상상력을 펼쳐야 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덕중의 정원>은 작가의 잠재력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작가는 실제 역사적 자료에서 찾은 기록을 토대로 아이디어를 잉태시키고 매혹적인 방법으로 이야기를 발전시켜 간다.
그만큼 사가 이상으로 역사에 대한 연구을 많이 했으리라 짐작된다.
전반부는 사건과 사건을 이야기하고 후반부는 사건과 사건 사이의 빈 공간을 서간문 형식을 빌려 메꿔가는 방식이다.
이 소설은 역사에 드러난 사건, 즉 어린 왕을 죽이고 자신이 왕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수양대군의 음모 보다 더 큰 그림이 숨어 있다.
수양대군은 세종대왕의 어지 54자를 왜 108자로 바꾸려 했을까.
과연 수양대군이 저지른 죄에 대한 업보로 두 아들이 죽었을까.
안견의 <몽유도원도>에는 어떤 비밀이 감춰져 있을까.
유교문화 체제에서 만들어진 세종어지가 왜 불교서적인 월인석보 앞에 게재되었을까.
독자는 배역들의 편지 내용을 통해 퍼즐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내용중에 '그림이 그림이 아닐 때' 라든지 '그것은 도처에 있지만 그 어디에도 없다' 라는 문장은 모호하고 신비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더불어 '백팔장' 이란 미스테리한 이름과 존재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떠오르고, 뽕잎에 새겨진 암호와 퍼즐을 맞춰가는 듯한 전개방식은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같은 느낌도 든다.
이 소설에서 여종 덕종은 승려덕종과 짝패를 이루고 왕과 백팔장이 짝패를 이루고 정치와 종교가 짝패를 이룬다.
짝패는 서로 통하고 어떤 짝패는 극단이기도 하다.
유교와 불교, 내시와 궁녀, 수양대군과 양평대군, 과학과 미신, 의도와 우연도 짝패와 관련해서 이분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재미 있을 것 같다.
특별히 음식의 궁합을 이루는 짝패는 독자들에게 건강에 관한 좋은 정보를 제공한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시대를 초월해서 볼 수 줄서기라든지 여론몰이와 같은 정치적 술수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모든 비극의 중심에는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있다는 것과 그 욕망이 세상의 질서를 질서를 깨드리고 수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갔음도 일깨운다.
작가는 또한 권력이 가까운데 있을수록 죽음도 가까이 있다고 말하며
권력과 무관한자의 삶이 최고의 경지라는 말을 남김으로서 권력의 무상함과 허망함을 알린다.
더 나아가 이 소설에서는 불교적 가치관,채식주의 및 페미니즘 흔적도 찾아 낼 수 있다.
토끼 몰이와 꿩고기는 이 행성의 생명불경과 약육강식의 생태계에 대한 고발이다.
작가는 꿩고기를 저주로 만들어 궁중을 발칵 뒤집히게 만든다.
훈민정음에 감춰진 역사의 흔적들을 놀라운 상상력으로 구현해 놓은 이 소설은 넘치는 흥미와 지적 자극으로 독자의 기대를 넉넉히 채워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서평은 출판사 서평행사에 참여하여 제공받은 책으로 자유롭게 작성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