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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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소설은 잘 읽지 않아서 작가가 대중화된 인물이 아니면 잘 모른다.

정보라작가도 처음 듣는 이름이다.

이 책도 제목 때문인지 에세이나 철학류의 한 종류로 생각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다

시간 때우는 삼류 소설은 아니었다.

형식은 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내용은 인간의 속성과 사회 현상을 문학적으로 잘 그려낸 작품이다.

아무래도 메시지가 무겁다 보니 감미로운 배경표현이나 섬세한 상황묘사가 없어 다소 딱딱한 느껴질 수 있다.

더구나 제목이 암시하듯 전반적으로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스릴러물이긴 하지만 특별한 장면은 의도적으로 긴장을 유도하려는 것 보다는 사건의 적절한 연결을 위해 필요한 조치로 보인다.

이 소설의 관전포인트는 인간의 숙명적인 고통이 이분법적 세계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그리고 작가는 그 고통을 어떤식으로 수용하고 통합해 가는가를 지켜보는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종교집단과 제약회사는 극단적인 관계이다. 종교집단은 고통을 유발해서 종교적 목적을 달성하고 제약회사는 고통을 제거함으로서 수익을 창출한다. 하지만 둘 사이의 모종의 유착이 있다.

남과 여는 서로 극단적이지만 작가는 둘 사이를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보았다.

그 중심에 주인공인 '경' 이 있다. '경'은 남자인 '태'와 육체적 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같은 여성인 '현' 을 사랑한다.

소설의 상당부분은 '경'이 '태'와의 관계와 '현' 과의 관계에서 오는 미묘한 갈등을 묘사한다.

그리고 그 해결점은 예상을 깬다.

대체로 여성작가들이 품고 있는 페미니즘의 그림자가 이 소설에도 드리워져 있다.

고통은 예로부터 철학과 종교의 단골 메뉴였다.

철학은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고통을 도구로 삼았고 종교는 구원을 위해 고통을 통과 의례로 여겼다. 고통을 이겨냄으로써 자아를 실현하고 고통을 극복함으로써 신과 가까워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고통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고통을 견디는 것을 정신병의 징후로 봄으로서 고통에는 의미가 있다는 전통적인 고통관을 해체한다.

이 소설은 여러가지 면에서 신선하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모두 한자어인 외자이고 소개도 한자 뜻 풀이 형식이다.

차례 또한 특이한 방식으로 전개한다. 1부에서 5부까지의 소제목은 뇌의 부분 명칭을 썼고 마지막 6부는 몸이다.

고통에 대해서도 머리와 몸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적용된다. 고통은 신체적인 통증보다 넓은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결국 6부에서 정신적 고통과 몸의 고통은 '삶' 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된다.

이 소설은 현실을 바탕으로 쓰여졌지만외계인과 초현실적인 장면도 개입시켜소설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잘 활용하고 있다.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선사하는 멋진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 서평은 출판사 서평행사에 참여하여 제공받은 책으로 자유롭게 작성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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