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프, 바이 더 시 - 조이스 캐럴 오츠의 4가지 고딕 서스펜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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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수록된 네 편의 작품은 서로 다른 내용이고 발표도 다른 시기에 했지만 옴니버스식 소설 같은 느낌이다.

모두 가족과 연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다.

네 편 모두 서스펜스 소설이다.

서스펜스는 강자와 약자의 존재가 전제조건이다.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경향성은 가정이라는 그나마 안정된 공간도 예외없이 적용 된다.

가족 동반 자살 사건이 두 건 나온다.

<카디프 바이 더 시>에서는 아버지가 아내와 자식들을 총으로 쏘고 자신 또한 자살하는데 오직 막내 딸만 살아난다.

<살아남은 아이> 편에서는 엄마가 자식들과 함께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여기에서는 남매 중 오빠가 살아난다. 남편은 외부 있었음(자세한 내용은 스포 문제가 있어 생략)

가족 동반자살이란 말은 틀린 말이다. 부모는 자살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미성년 자식은 살해 당한 것과 다름없다. 강자 혹은 권위자의 폭력인 것이다.

네 편에 나오는 주인공은 모두 3살에서20대 초반까지의 여성이다. 두 편은 아동이고 다른 두 편은 성년을 앞둔 미성년자와 20대 초반이다.

여성과 아이는 약자를 대변하는 그룹이다

가족 잔혹사라해서 선혈이 낭자한 고어물을 연상했다

하지만 한 편을 제외하고는 예상했던 만큼의 잔혹한 장면은 나타나지 않았다.한 편 마저도 일부 구간에서만 등장한다.

고어물이라기 보다는 스릴러물에 가깝다. 자극적이지 않은 공포가 은근히 따라 다니고 꿈과 현실이 뒤섞인 몽환적인 느낌도 든다.

1인칭 주인공 시점 특성상 독자는 주인공의 느낌과 생각에 동일시 되어 객관성을 잃을 수 있다.

때문에 주인공 자신의 문제점은 간과하기가 쉽다.

소설 내용은 주인공의 상상 일 수도 있고 꿈일 수도 있고 편집증에서 나온 드라마일 수도 있다.

예민한 독자라면 주인공이 자기 생각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주인공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노골적인 단서는 제공하지 않는다.

독자에게 주는 공포는 바로 불확실함이다. 감각적인 두려움보단 심리적 불안으로 독자를 선동한다.

성인 남성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을 다루는 작품들이 많다. 그렇다고 여자라해서 특별히 긍정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주인공이 자신의 어머니를 허술하고 신뢰감이 없는 대상으로 평가하는 장면도 나온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페미니즘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이 소설은 가족참사를 다루고 있지만 넓게 보면 남성과 여성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불만, 또는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성인들의 무책임하고 부조리한 세계의 고발, 또는 동물 관리국에서 길고양이들이 살고 있던 덤불을 가차없이 밀어버린 이야기까지 포함시키면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들의 운명적 사슬구조에 대한 항변일 수도 있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주인공의 무력감을 통해 약자의 서글픈 현실을 토로한다

"포식자들의 눈길을 끌지 않으려고 일말의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는 칙칙한 깃털이 달린 새가 된 심정이다"

<카디프 바이 더 시>에서 주인공이 품에 숨겨간 칼은 마지막 장면까지 드러나지 않았다가 별개의 이야기인 두번째 작품<먀오 다오>편에서 번뜩인다.

구체적인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작가는 14세 소녀에서 잔혹한 역할을 맡기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극적인 사건은 길고양이 먀오 다오의 역할과 중첩되어 모호하게 일어난다.

세번째 작품인 <환영>은 나머지 작품과 달리 주인공의 어린시절 배경이 없이 성숙한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에로틱한 장면도 엿 볼 수 있다. 그리고 확실히 다른 작품에 비해 잔혹한 상황이 좀 더드러난다.

마지막편 <살아남은 아이> 에서는 아이와 함께 자살한 엄마의 죽음과 그 자리에 들어온 새엄마 엘리자베스가 적응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미스테리한 현상들이 비현실적이고 모호한 분위기 속에서 펼쳐진다.

<환영>과 <살아남은 아이>는 페미니즘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남자와 달리 자식을 자신의 몸안에서 만들어야 하는 여자, 이 구조적 차이로 인해 감당해야 할 불공정한 운명을 작가는 죽음으로 항거한다.

이 소설은 말초시경을 자극하거나 숨막히는 공포로 독자들을 사로잡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야기는 잔잔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과 긴장이 읽는 동안 안개처럼 조용히 피어오른다.

여기에서 만나는 공포는 천박하지 않고 우아하다. 그리고 달콤하다.

좀 색다른 고급스런 공포를 경험하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한 번 읽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 서평은 출판사 서평행사에 참여해서

책을 제공받아 자율적으로 작성한 것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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