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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이 소란하지 않은 계절 ㅣ 현대시학 시인선 107
이경선 지음 / 현대시학사 / 2022년 11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만 읽어보았을 땐 작가의 나이가 대략 사오십은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프로필 사진이 너무 젊어 인터넷을 뒤져보고 깜짝 놀랐다.
30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물론 사람들이나 책을 통해 이전 시대의 분위기나 느낌을 간접 경험 할 수는 있지만 직접 살아온 사람처럼 글을 쓰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시의 형식을 빌어 쓰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마치 그 시대를 지나온 사람처럼 글을 쓴다.
매화꽃 피울 적에
어미는 서울로 간다고 했다.
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아이는, 다섯 남짓의 아이는
엄니따라 서울 간다 했다.
어미는 아이를 달래고
멀리 한발짝 지주목 삼아
매화 한 그루 심었다.
서울 길 나설 제
아이는 흙바닥서 발버둥을 치었다
두 발 동동 어미 가는 길
쥐똥 같은 눈물 뚝뚝 흘리었다
해지나 지주목 내리고
매화는 가지마다 꽃을 피웠다
담 너머 어미 온 날 있다
아이는 펑펑 울었단다
어미도 눈물을 쏟았다
매화 잎 마당서 춤추고
별빛은 처마 끝 나란히 섰다 (p37)
사오십대가 아니면 이런 시정이 생길 수 없다.
이 시는 그 시절을 겪어온 나에게 당시의 절박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
엄니 따라 서울 간다고..., 흙바닥서 발버둥치고..., 쥐똥 같은 눈물...,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매우 소란스런 상황이지만 왠지 소란스럽지 않는 묘한 정서가 흐른다.
시인은 나이를 초월하는가 보다. 영혼이 맑아 시대를 넘나드는 감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무튼 시인의 무한한 감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책에서 시들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고 소제목으로 1부는 꽃, 2부는 가을, 3부는 눈, 4부는 여름으로 이름을 붙였는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식상한 패턴에서 벗어나고 순서 역시 여름이 맨 마지막이다.
그리고 계절간의 경계도 뚜렸하지가 않다. 이것 역시 인간이 만든 사계절의 틀에서 벗어나 자연의 순수한 세계로 나가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1부에서 시작한 꽃이야기는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의 시들은 대게 자연에 소재로 하고 있어 읽을 때 마다 하늘이 열리고 바람이 불고 꽃이 핀다.
그래서 읽는 이의 마음을 평화롭고 잔잔하게 만든다.
혼탁한 세상을 건너가면서 가슴 답답하고 지친 영혼이 있다면 소란이 소란하지 않는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서평은 출판사 서평행사에 참여하여 주관적인 입장에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