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시민들

러시아의 시민들
백민석 지음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러시아에 대한 나의 기억은 냉전시대 빨갱이의 원조로 학습된 구소련의 모습이다. 반공주의 교육에 의해 그 나라는 악마의 숙주였고 반동분자는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처참하게 죽어가고 국민들은 한조각의 빵을 배급받기 위해 한 없이 줄을 서야만 하는 저주받은 땅이었다.

각인된 이런 이미지는 구소련이 해체된지 수십년이 지났고 관련 정보가 왜곡되었다는 사실이 온세상에 알려진지도 꽤 되었지만 굳건히 내 머리를 지키고 있었다.

작가 역시 러시아는 음험하고 무서운 나라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이번 여행은 그러한 편견을 깨는 훌륭한 도구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나 또한 이 책을 선택하게 된 동기가 이런 왜곡된 기억체계를 환기 시키려는 무의식적 욕구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여행은 인천공항의 밤풍경에서 시작된다. 홀로 떠나는 작가의 마음이 독자에게 담담하면서도 설레임으로 찾아온다.

쪽마다 삽입된 사진은 글을 팽창시키고 생생한 현장감을 주기 때문에 독자가 마치 직접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여행을 계속 따라가다보면 조금씩 러시아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해체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장소가 상트페테르브르크 광장이다.

여기서는 버스킹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그들이 밴드를 연주하면 구경꾼들은 자연스럽게 나와 몸을 흔든다고 한다. 이러한 락 그룹들은 이미 소비에트 체제에서도 있었다고 하고 그 당시는 의료와 교육은 무료였고 집세와 식료품가격은 매우 저렴했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던 참혹한 러시아가 아니었다.

이 책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뭔가를 보여줄려고 애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무겁지 않다. 모든 장면들은 거부감없이 평화롭게 스쳐지나가고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또한 작가는 현장 경험을 통해 얻은 색다른 문화들을 생생하게 전한다. 사진 찍을 때 무릎 꿇지 말아야하고 셔터를 여러번 누르면 안되며 박물관이나 극장에서는 겉옷을 벗어야 한다는 것들인데 무안을 당하면서 얻은 소중한 경험들을 소개하고 있다.

다른 유럽에서 볼 수 없는 또 하나의 볼거리는 미술관이다. 작가는 보물창고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우리가 그동안 보고 배웠던 교과서적 미술세계를 벗어난 작품들이 등장한다.

또한 이 책에서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이용할때 가이드북과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정보들이 담겨있다. 길어서 여기서는 생략한다.

책제목 그대로 이 여행기는 유명한 건물이나 풍경이 아닌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사진의 초점은 인물을 향하고 있다.

사진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미소를 품고 있다. 표지의 사진은 전체 사진 중 유일하게 미소짓지 않은 한장의 사진이라고 한다. 작가는 이런 특이한 인상 때문에 표지로 선정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작가는 자기가 가 본 어느 나라 사람들도 이들보다 친절하지 않았다고 러시아 시민들에 대한 호감을 표현하면서 여행에서의 만족감을 드러낸다.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쓴 작가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다. "<횡단>은 자신이 가고자하는 특정지역과 그 지역에 이르는 경로를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체계화하려는 의지에서 나온 행위,실증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러시아 여행도 그랬다. 직접 횡단해 보지 않았다면 내가 러시아에 갖었던 많은 허황된 편견들이 아직도 그대로 남았을 것이다. 실증은 편견을 깨는 필수적인 행위이다" (p296) 라고 하며 러시아 여행을 통해 얻은 궁극적 소감을 펼쳐보였다.

나 역시 함께 동행하며 얻은 간접적 경험들이 나의 경직된 소비에트 사고들을 균열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틀만에 러시아 전역을 다녀 온 것처럼 뿌듯한 기분이 든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