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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빙허각 ㅣ 창비아동문고 340
채은하 지음, 박재인 그림 / 창비 / 2024년 11월
평점 :
이웃집 빙허각
( 창비아동문고 - 340 )
채은하 글
박재인 그림
창비
2024년 11월 22일
196쪽
13,800원
분류 - 고학년 어린이 창작동화
한국사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배우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인데요. 각 실학자들이 우리 나라에 끼친 업적과 주장한 부분들을 암기해야 하죠. 헌데 조선 실학자 중에서 여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조선 실학자 중 단 한 명의 여성이 존재했습니다. 어쩌면 더 많았을지 모르나, 기록으로 그 업적이 남아있는 것은 단 한 사람인 모양이에요.
이 책은 조선 유일의 여성 실학자가 쓴 <규합총서>라는 책을 쓰는 과정을 주인공 덕주의 시선을 통해 서사로 만든 성장동화입니다.
<규합총서>를 아시나요? <규합총서>는 여성이 직접, 여성이 하는 일에 대해 한글로 쓴 책입니다. 여성의 일들을 총 망라한 실용 백과사전이에요. 실생활에 유용한 아주 훌륭한 책이랍니다.
<규합총서>를 쓴 빙허각의 모습을 담은 이 동화가 어떤 내용인지 <이웃집 빙허각>을 살짝 소개해봅니다.
주인공 덕주는 12살로 양반이지만 가난한 관계로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해야하는 소녀입니다. 하지만 집안일보다 글공부를 하고 글을 쓰는 것이 좋은 덕주에게는 지금의 삶이 행복하지 않아요. 그런 중 우연히 만나게 된 할머니 한 분과의 인연으로 덕주의 생각은 바뀌게 됩니다. 덕주의 의도와는 다르게 아버지에 의해 억지로 빙허각 할머니의 집으로 일을 배우러 가게 되었는데요. 사실 할머니는 실생활에 쓰이는 학문을 중히 여기고 연구하시는 실학자셨어요. 그 할머니를 도와 5권짜리 <규합총서>를 언문으로 바꿔 쓰는 것이 바로 주인공 덕주가 하게 되는 일입니다. 할머니를 도우면서 여성의 삶이 다 똑같지 않고 입체적으로 자신만의 장점을 가지며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당시 가부장제의 모순과 함께 여성으로서 당당히 살아가고자 하는 덕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니, 꼭 읽어보도록 해요.
저는 이 책이 좋았던 부분이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주인공 덕주에게선데요. 사회적 억압, 특히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대부의 모순과 함께 실제 우리가 중요시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12살 소녀가 알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모두가 똑같이 살 필요가 없고, 각자가 잘 하고 좋아하는 것으로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행복한 삶이라고 자아를 찾는 성장 캐릭터라 멋있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덕주 또래 소년 윤보의 이야기입니다. 한낱 글공부보다 가족과의 추억과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인물인데요. 책의 끝부분에 다시 등장하는 윤보는 자신이 생각했던 그대로의 어른으로 자라있어서 훌륭한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회에 속하다보면 쉽게 물들기 마련이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부분들도 퇴색하는데 말이죠. 딸과 함께 세책방에 소설을 빌리러 오는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아마도 그 순간이 딸과 함께 누리는 행복한 추억의 시간이 되겠죠?
세 번째로는 바로 이 책의 처음 시작일지도 모를 빙허각 할머니입니다. 끝까지 책을 쓰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킨 분이시죠. 진작에 포기하셨다면, 우리가 <규합총서>를 만날 일을 없었겠지요? 자식을 다 키우고, 시골로 내려오게 되었지만, 그것은 뒤로의 퇴보가 아니었습니다. 그 시간마저 할머니의 지혜를 책으로 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던 게지요.
이 세 인물에서 공통된 점이네요. 바로 당시 중요시하던 사상들에서 모순들을 찾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끝까지 염두한다는 것이요. 아이들이 배워야 할 부분들이 바로 그런 부분 아닐까요? 어른들이 정해주는 삶을 살기보다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찾아 도전하고 살아가는 것이요.
첨에는 여성서사라 우리 여자 어린이들만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윤보 덕분에 남자 어린이들도 이 책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덕주와 빙허각 할머니에게서도 그렇구요.
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도 분명 좋은 자극을 받을 것 같습니다. 강력추천합니다.
마음에 남은 문장들
p68
˝백성의 생활을 나아지게 하는 학문이란 결국 잘 먹고 잘 입고 건강하게 사는 방책을 연구하는 것 아니겠니. 그 일을 가장 잘 아는 게 누구냐. 생각해 보렴. 그런 학문이야말로......˝
˝마땅히 부인이 연구할 바다.˝
˝그래. 그런 연구가 나의 중한 일이다.˝
p80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면서, 먹고사느라 바쁜 사람들은 읽을 수 없는 글자로 쓴 게 이상하지 않나요? 그 진짜 글자라는 걸 아무나 매울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말씀하신 대로 글자 공부부터 하려면 밥벌이도 하지 못할 테고, 그러면 글을 배우기도 전에 꼴딱 굶어 죽어 버리고 말 텐데,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연구하는 게 대체 뭔 소용이래요.˝
p85
˝아까 오래 남는 책을 쓰고 싶다고 하셨지요. 더 쉬운 글자로 쓰면 더 많은 사람이 볼 텐데요. 더 많은 사람이 읽고 아끼는 책이 더 오래 남지 않을까요?˝
p116
˝아무래도 저 강물 때문에 그런가 봐요. 멀리까지 뻗은 강을 보면 나도 모르게 생각이 따라 흘러요.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고, 그중의 절반은 여인일 텐데. 정말 그 많은 여인이 이리 똑같이 사나. 정말 모두가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사나 궁금해져요.˝
p120
˝빙허각이라고 한다. 기댈 빙에 허공 허, 집 각을 쓰지.˝
덕주는 할머니의 호를 연거푸 중얼거렸다. 빙허각, 뜻을 풀자면 허공에 기대다, 혹은 아무 데도 기대지 않는다는 뜻이다. 할머니가 언덕에 홀로 서서 강을 내려다보던 모습이 떠올랐다. 할머니의 호는 그 모습처럼 어찌 보면 무척이나 외롭고 달리 생각하면 한없이 자유로운 느낌이다.
p125
글씨가 손에 익을 때까지 연습하듯이 할머니도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조금씩 자신을 만들어 왔구나 싶었다. 자기 뜻대로 말하고 움직여 본 시간이 쌓이고 쌓여서 끝내 자기 공부를 하고 글도 쓰게 된 거겠지.
p151
˝왜 쓰느냐. 그 답은 네가 한 말 속에 있겠구나. 내가 일평생 해온 일이고, 내가 가장 잘 아는 일이니까. 설령 누군가는 고작 여인의 일이라 깎아내리고, 또 그 일이 거칠고 고되다고 외면하더라도 그 속에는 내 경험과 삶이 들어 있으니까. 그건 어떤 책에서 읽는 글귀보다 귀하지 않겠니.˝
p152 - p153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세상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꿈꾸게 돼요. 나도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의 마음을 설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넌 이야기를 끌어내는 재주가 있지. 그걸 책으로 쓰면 되겠구나. 네가 귀 기울여 들은 목소리들이 힘이 되어 줄 게다.˝
˝쉽진 않아도 호시탐탐 기회를 살펴야지.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인지 아니? 쉴 틈 없이 바쁜 외중에도 언젠가 꼭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잊지 않았다는 거야. 어쩌면 너는 나보다 훨씬 금방 해낼지도 모르겠구나.˝
p158
˝나는 자주 생각했어. 어머니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낼걸. 음식이랑 살림도 배울걸. 그랬으면 어머니를 돌봐드릴 수도 있었을 거고, 그 추억도 간직할 수 있었을 텐데. 나한테 그런게 한낱 글공부보다 중요한데, 그때는 몰랐어.˝
덕주는 윤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제 손으로 살림하며 살겠다고 의연하게 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단단하게 말하기까지, 윤보의 마음은 수많은 굽이를 지나왔나 보다.
p167
˝난 그저 네가 잘 살길 바랄 뿐이다.˝
˝저도 그러고 싶어요.˝
덕주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중얼거렸다. 말을 내뱉고 보니,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해졌다. 덕주는 잘 살고 싶다. 다만 아버지가 바라는 모습과는 다르다. 할머니가 책을 쓰는 것처럼 자기 뜻대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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