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몸의 주인이다. 조용히 조절하여 편안케 해야 한다'라는 그의 심신관은 3강에서 이야기했듯이, 도교 생명관의 기초가 되는 사고방식이다.
더욱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기를 누그러뜨리며, 말 수를 줄이고 조용히 말을 한다. 이는 덕을 기르고 몸을 돌보는 일이다. 그 도는 같은 것이다. 말을 많이 하는 것과 마음이 어지러워 성미가 거칠어지면 덕을 해치고 몸을 손상하게 된다. 그 해도 같은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6강에서 다루었던 도교 수양론과도 공통되는 바이다.
또한 자연계의 '음양의 기'가 잘 유행해서 막히지 않아야 사계절의 원만한 순환과 풍년이 오는 것처럼 사람의 신체도, '기혈이 잘 유행하여 막히지 않으면 기가 강해져서 병이 없게 된다'라고 하면서 호흡법, 도인, 안마, 고치 등의 방법을 설명하는 것은 도교의 양생 사상, 방법과 동일하다 하겠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이러한 양생법을 '천지와 부모에게 효를 다하고, 인륜의 도를 행하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결론짓고 있다.
- 도교와 일본 문화. 348.
책을 읽고 '내가 도교를 오해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도교가 달마대사가 창시한 그 도교인 줄 알았다. 달마 대사는 중국 남북조 시대에 불교의 선종을 창시한 인물인데, 본명은 보디다르마이고 남인도 파사국 향지왕의 셋째 왕자였다. 달마대사는 부처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중국으로 와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 수행한 결과 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선의 창시자인 달마는 "밖으로 모든 인연이 쉬어지고 안으로 헐떡임이 없음으로 마음이 장벽과 같아지면 진리에 이른다'라고 말했다.
왜 나는 도교가 '선'이라고 생각한 걸까?
일본의 젠사상이 도교라고 오해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달마'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저자가 의도한 대로 '도교 원전에 대한 꼼꼼한 독해를 바탕으로 도교의 전체상을 파악'해서 그간 쌓아온 오해를 풀게 되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도를 아십니까?"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도'하면 노래와 장면이 떠오르는데, 990원의 '도를 아십니까?"라는 노래와 개그프로에서 '도를 아십니까?'라고 물으며 호갱이를 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990원의 도를 아십니까라는 노래는 '친구가 우연히 지하철역을 지나다가 행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붙잡혀서 '도'라는 단어에 설득 당하는 상황을 반복되는 일상에 대비해 가사로 풀이했다.
개그프로는 사람들이 많이 통행하는 곳에서 낯선 사람에게 '도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던 경험을 소재 삼아 웃음으로 엮은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도'라는 말과 가깝게 지내고 있지만 실상 정확히 '도'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과연 '도'는 무엇일까?
'도교'와 '도가'는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도를 한자로 풀이하면 길 도(道)이다. '쉬엄쉬엄 갈 착'과 '머리 수'를 합쳐 만든 글자인데, 사람이 다니는 길과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뜻한다. 도교는 중국에서 유교, 불교와 더불어 삼교의 하나로 간주되어 오랫동안 생활 깊숙이 관여해 왔다. 종교와 철학 사상뿐만 아니라 문화와 생활 전반에서 도교의 영향은 막강했다.
도가는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철학 사상을 말하는데, 도교와 도가사상은 약간 다르다. 도교는 종교적이지만, 도가는 철학적이다. 다시 말해 도교는 고대의 민간신앙을 기초로 노장사상, 역리, 음양오행, 불교와 유교 사상까지 아우르는 개념임에 반해, 도가는 무위자연을 따르는 사상 경향이다.
도교는 고대부터 내려온 중국의 여러 종교적 관념들을 바탕에 깔고서 오랜 숙성 기간을 거쳐서 생성되었다.
다시 말해, 도교는 노자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노자가 도교의 교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도교는 정치철학으로서 윤리와 사회사상을 담고 있고 불교, 유교와 흡사한 내용을 지니고 있으며 문학과 예술로 녹아들어 일상생활에서 뭉뚱그려 존재한다.
다채롭고 폭이 넓은 도교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지만, 도교가 갖가지 사상이 중층적으로 겹 쌓여서 형성되었다는 점만 알아도 반은 성공한 셈이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