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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갈자리에서 생긴 일 (특별판) ㅣ 작가정신 소설향 15
이응준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5월
평점 :
이 책은 흥미로운 주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해하기 다소 난해한 장치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일단 2001년 3월에 초판에 나와서 현재 2017년 내 손에 들려 읽혀지게 된 이 소설은 오랜 시간 만큼 오래된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직은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베트남의 모습.
그리고 도망갔다가 돌아온 한때는 여성이었을지 모르는 마약상이자 베트남의 이단자. 악마를 숭배하는 엘리트 여자. 망해가는 재벌2세...
세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책은 절망과 집착, 희망을 갈구하지만 결국 주저 않아버리는 무기력함, 도착에 가까운 성적 환타지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좀 야하고 끈적하고 몹시 찝찝하다.
일단 나는 중편소설이라는 것을 처음 접해보았다.
장편이라기엔 이야기의 흐름이 폭이 짧고 단편으로 끝내기엔 많은 것을 보여주는 길이감이다.
손바닥만 한데 얇은 이 책은 부담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중편소설이다.
독백과도 같은 3인칭시점인 이 소설은 읽다보면 어느새 1인칭에 맞춰져 있곤 한다.
주인공 효신은 무기력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재벌2세이지만 가정과 기업을 등한시하고 여성과 밀회를 떠난 아버지와 파혼을 앞둔 약혼녀를 피해 베트남으로 날아온다. 그곳에서 T를 만나 연애를 하고 단순한 섹스파트너관계를 유지하는듯 했지만 가학적이고 몽환적인 T의 매력에 빠져 나오지 못하고 마약에 중독된 채 언제 끝날지 모를 삶에 겨우 기대어 살아나가고 있다. T의 곁에 머물며 그녀가 숭배하는 성배에 오줌을 갈기고 보기좋게 도망오지만 한국에서의 삶은 그를 나락으로 몰아간다. 결국 다시 T를 찾아 베트남으로 떠나지만 망쳐버린 성배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린다. 어떠면 친구가 되자마자 헤어지게 된 깐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며 잠시라도 희망을 꿈꾸었을지 모르는 효신은 결국 악마의 올가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끝이 매우 어둡게 끝난다. 손만 뻗으면 잡힐 것 같은 푸른 하늘의 고요하면서 나른함, 그 옆에서 쫑알 거리는 아이들.
그렇게 평범하고 지루할만큼 평화로운 나날이 효신에게도 펼쳐질 수 있었다. 하지만 무시해도 좋을 약간의 기만이 T의 남편이자 주인인 악령의 저주에 걸려들게 했고 그런 사소한 일이 발단이 되어 결국은 파국을 맞이 한다.
세계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는 재산이 있는 재벌2세에게 삶의 즐거움은 무엇이었을까.
효신이 진정 원하는 자유란 돈으로 살 수 없는 거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