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가족 - 일상에 숨어 있는 한자의 비밀
장이칭.푸리.천페이 지음, 나진희 옮김 / 여문책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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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가 가진 매력이야 여러가지겠습니다만 제가 특히 관심을 가지게 되는 부분은 어원인 듯 합니다. 의사소통의 도구라는 표면 밑에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역사를 담아내는 언어의 매력은 흥미를 자아냅니다. 특히 그 언어가 발생한 곳의 문화와 사고의 방식이 드러나니 더욱 재미있지요. 한자는 조어 방식도 그렇고 어원이 훨씬 더 직접적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지요. 다만, 우리말 속에서 한자어의 비중의 엄청난데 비해서는 한자의 어원에 대해 다루는 책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아마도 한자가 결국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점도 있겠고 한자 교육 무용론이 강성한 사회 분위기도 반영된 것이 아닐지 미루어 짐작해보게 됩니다. 그 와중에 이 책은 흥미롭게도 중국인이 저술한 책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가더군요. 한자의 고향에서 쓰여진 책이니 내용도 풍부할테고 우리의 한자와 비교해보는 맛도 있을테니 말입니다.



 소감부터 말해보자면 흥미로운 구석도 있으나 읽기에 상당히 버거운 책이었습니다. 중국어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였겠습니다만 사실 이 정도로 우리말과 중국어에서의 한자 쓰임이 다르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었네요. 물론 기본적인 음과 훈은 한국과 중국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자가 짜여져 단어와 숙어를 구성하는 방식은 닮은 부분보다 다른 부분이 더 많다는 인상입니다. 책의 부제가 '일상에 숨어 있는 한자의 비밀'입니다만 이 일상이 중국의 일상이고 보면 그 배경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한국인으로써는 읽어가면서 걸린느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겠네요. 가벼운 교양서 읽는 기분으로 읽어갈 생각이었는데 실은 학술교재를 읽는 마음으로 대하지 않으면 안되는 책이었어요. 결국 버거운 책을 만났을 때 제가 쓰는 트릭, 재밌어보이는 부분만 먼저 골라 읽기 트릭을 써야 했습니다. 다행이랄까, 책의 구성이 비슷한 단어를 묶어내어 유래를 살펴보고 닮은 점과 차이점을 비교해보는 방식인지라 흥미로울 듯한 부분을 골라내기에 편리한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 '한자 가족'인 것이겠지만요.



 그래서 골라낸 부분이 숫자 가족 챕터였습니다. 숫자 자체가 추상인만큼 기본적인 인식 체계를 반영하고 있고, 그것이 그대로 기호화되어 한자화되면 역탐지로 그러한 인식 체계를 헤아리기에 편리하겠지요. 이런 면에서는 분명 구체적인 의미의 한자보다 흥미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 한자의 조어 방식부터가 흥미로운데요, 지사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근간에는 상형이 자리잡고 있는 조어 과정을 보노라면 구체를 통하지 않고서는 추상을 인식할 수 없는 한계가 일찌감치 드러나는 듯하여 재밌습니다. 0을 뜻하는 O도 재밌어요. 한자인가부터 의심스러운 이 글자는 실제 쓰임 때문에라도 특수한 한자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고 하겠는데요, 서양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라비아 숫자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오리알 형태가 천원지방과 걸맞지 않는다 하여 원형에 가깝게 변화시킨 것이랍니다. 모든 것을 중국식으로 녹여내는 중국 특유의 용광로가 작용한 것이겠지요. 그 외 중국인이 왜 특정 숫자를 선호하는가에 대한 부분은 직접적으로 문화적 배경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고요.



 후반부 돈과 관련된 한자, 계량 단위와 관련된 한자 파트도 흥미진진합니다. 양자가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거든요. 명청대에 이르러 상업 경제가 발달하고 은 중심의 경제체제가 확립되면서 그 영향이 어떻게 한자에 미치게 되는가가 그려집니다. 이 부분은 오히려 조금 더 자세하게 역사적 내용을 담아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게 느껴지더군요. 역사책이 아니니만큼 다루어질 수 있는 부분에 제한이 있었겠지만요.


 중국책을 번역한 경우 으레 보게 되는 고풍스러운 어투라던가, 학술적 딱딱함이 느껴지기는 합니다만 번역도 읽기 쉽게 된 듯 합니다. 혹 한자 공부에 유용하려나 생각하실 분께는 권하기 애매하다는 느낌이네요. 확실히 우리의 한자와 중국의 한자는 많이 갈라져나왔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간체자를 쓴다거나 기본적인 의미가 다르다던가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무언가 선이 확실히 느껴집니다. 오히려 중국어를 배우려는 분에게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오히려 간체자 표기가 없다는 것이 아쉬울수도 있겠지만요. 여러모로 한자 자체보다는 그 배경이 되는 사고나 문화를 이해하는데 더 초점이 맞춰진 책이라고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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