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마지막 그림 - 화가들이 남긴 최후의 걸작으로 읽는 명화 인문학
나카노 교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술 작품을 소개하고 해설하는 류의 책은 항상 일정 정도 이상의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일단 시각적으로 강하게 어필이 될 뿐더러, 작가나 역사적 배경 등의 요소를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기도 하니 말입니다. 저도 꾸준한 애독자 중 하나입니다만, 중복되는 소재가 있더라도 늘 새로운 점이 더해져 있게 마련이라 새로운 기분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나카노 교코는 '무서운 그림' 시리즈로 알게 되었습니다만 그 후로도 꾸준히 이런 책을 내주고 있네요. 글솜씨도 글솜씨지만 잘 골라낸 주제에 그림들을 묶어내는 선구안(?)이 뛰어난 작가라는 인상입니다. 이번 책에서는 화가의 일생을 설명하되 그 화가의 백조의 노래로 정점을 이루도록 글을 짜내고 있군요. 유명한 예술가들만 소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접근 때문에 참신함을 잃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기는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일반적으로 가장 친근하면서 직접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명화들이 쏟아져 나온 시대입니다. 이 시기는 다시 셋으로 나뉘어서, 르네상스 초기 신화와 종교를 소재로 하는 시기, 궁정의 요구에 응하여 그림을 그려낸 시기,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시민사회의 수요에 응답하는 시기가 차례로 소개되어 있네요. 이렇게 시간순을 따르다보니 미술사의 전개도 상당히 강하게 드러나더군요. 그렇다곤 해도 역시 각각의 예술가의 삶의 모습이 더 부각되어 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첫번째로 소개된 보티첼리의 생애부터가 놀라움을 안겨줍니다. 보티첼리 하면 [비너스의 탄생]이나 [봄]처럼 우아하면서도 관능적인 그림으로 알려져 있고, 그만큼 르네상스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사보나롤라의 시대를 거치면서 기존의 예술관을 버리고 금욕적인 우의화로 회귀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사보나롤라의 반동이 피렌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지식은 있었습니다만, 그것이 우리가 잘 아는 화가의 삶에 이런 식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생생함을 전해주는군요. 특히 [아필레스의 중상모략]이라는 작품을 통해 시각적으로 전달되는 건조함과 경직됨을 보노라면 이것이 정말로 그 보티첼리의 작품인가 눈을 의심하게 될 따름입니다. 이랬기에 미술사에서 이렇게 묻혀버렸던 것이겠지만요. 비록 자신의 신념에 따른 개종이었으니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웠을지 모르겠습니다만, 후세 역사의 흐름을 알고 있는 이들의 눈에는 이런 침잠은 안타까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겠네요. 



 충격을 준 그림으로는 루벤스의 [댐이 있는 풍경]도 빠뜨리면 않을 것 같습니다. '정육점 주인'이라 놀림을 받을 정도로, 따뜻한 색감으로 그려낸 풍만한 여체가 하나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루벤스인데요, 그런 그가 그려낸 마지막 그림은 놀라울 따름입니다. 처음 이 그림을 보고 떠올린 것은 추사의 '세한도'였습니다. 수묵화 같은 질감으로 사람 한 명 없는 풍경을 다소 메마르게 그려낸 이 그림은 내면으로 침잠해간 말년의 루벤스를 상상하게 만들더군요. 추사의 불운한 인생과는 꽤 다른 삶을 살았던 그이지만 시간과 공간은 물론 개인의 경험까지 넘어서서 말년에 건너본 세계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당시 아직까지 풍경화가 천대받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그야말로 자신만을 위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해낸 그림이라고 하겠네요. 



 그 외에도 그야말로 고야라는 인물을 거칠게 던져주는 듯한 [나는 아직 배우고 있다]와, 세월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서글픔을 느끼게 만드는 페르메이의 [버지널 앞에 앉아있는 여인]도 기억에 남는군요. 가장 대표적이지는 않을지라도, 기교적으로 정점을 지났을지라도, 예술가가 남긴 마지막 작품은 미술사적 가치와는 다른 시사점을 보여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책이었어요. 특유의 쿨한 문체는 보는 재미를 더해주었고요, 일본 작가의 책답게 간결하면서도 친절한 구성의 책이라는 점도 덧붙여야겠네요.(역시 일본 교양서답게 분량은 좀 적은 편이라는 점도요.) 내용 면에서나 구성 면에서나 글솜씨 면에서나 꽤나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