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망상
루퍼트 셸드레이크 지음, 하창수 옮김 / 김영사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도발적인 제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더군요. '과학의 망상'이라, 원제가 'Science Delusion'이니 딱히 더 자극적으로 번역한 것도 아닌 셈입니다. Scientific Illusions 정도라면 몰라도, 이 정도 되면 과학의 근본 원리에 도전하는 제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챕터의 제목도 만만치 않습니다. 자연은 기계적인가? 물질과 에너지의 총량은 항상 일정한가? 자연법칙은 영원불변한 것인가? 초자연적 현상은 환각일까? 등등.. 과학을 넘어 철학에 이르는 심오한 질문들이라 만만치 않은 두께의 이 책에서도 이것을 다 논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군요. 이런 경우 저자가 누군지 확인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일텐데요, 영국 출신의 생물학자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실제 책에 들어가보면 진화론이나 분자생물학 등의 내용이 상당히 많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형태발생장 이론을 주장했다고 하는데요, 소개를 이것부터가 살짝 일반적인 과학의 경계를 넘어서는 내용이더라고요. 그런 저자의 신념체계가 이 책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추정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는 서문이 특히 중요하리라 생각되네요. 서문을 보면, 저자가 공격하고자 것은 과학의 일반 체계가 아님을 알게 되거든요. 사실 이 책은 콕 찝어 '유물론'을 비판하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현대 과학의 경향을 볼 때, 과학자들이 유물론에 대한 신념이 과하다고 느꼈던 것이죠. 실제 각 챕터를 마무리 지으면서 '유물론자에게 던지는 질문들'을 따로 던지는 것으로 맺음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본문으로 들어가보면 내용은 사실 예상보다 온건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직접적으로 타겟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쓰여진 책이 아니라는 점이 첫번째 이유이겠습니다. 사실 이 책은 상당 부분 계보학적인 방법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과학의 발전과정을 돌이켜보고 현대 과학의 양상을 보여주는 내용이 대부분이라는 것이죠. 당연한 이야기겠습니다만 이것만으로도 유물론의 약점은 충분히 드러납니다. 모든 체계가 그렇듯, 유물론도 역사적 과정을 거쳐 점진적으로 다듬어져 변화해온 것이고 그 양상도 다양합니다. 완결되고 완성된 체계가 아닌 것이죠. 성장 과정에서도 모순되는 부분이 있었고 현대에 와서도 새롭게 발견된 사실들에 의해 방향성이 다양하게 갈라지게 됩니다. 그것을 보여주기만 해도 저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지점이 자연스럽게 도출되게 되는 것이죠. 저로써는 문제의식 부분보다 저자가 들려주는 과학사 이야기가 훨씬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에 읽었던 미치오 카쿠의 '불가능은 없다'라는 책이 연상되는 부분도 많았어요. 이 책을 보신 분이라면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런 방식이 잘 먹히는 부분이 있고 잘 먹히지 않는 부분이 있다보니 읽어가기에 순탄한 정도가 챕터별로 낙차가 큰 편입니다. 작가는 과학자답게 과학의 방법론을 신뢰하며 논지를 펴가는데요, 스브적 그 경계를 넘어가는 듯한 부분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6챕터 '생물학적 유전은 모두 물질적인가'가 대표적이죠. 이것이 이유가 있는 게 여기서 작가의 형태발생장 이론이 강하게 주장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물론적 한계를 지적하는 것과 별개로,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이론을 주장하려면 적절한 근거를 들어주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가 제시하는 근거는 현 단계에서는 아무리 봐도 유비추리로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결국 가설일 수밖에 없는 것에 너무 힘을 주다보니 흐름이 이상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책이 생각보다 덜 자극적이었던 두번째 이유는 저자가 설정한 적이 다소 가상적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유물론을 대상으로 로 한다지만 챕터별로 그려지는 그 모습은 논지에 맞게 선택된 특징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특징을 모두 아우르는 극단적 유물론을 믿는 과학자는 아마도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다보니 결론 부분에 이르게 되면 허수아비를 두드리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이죠. 이 책을 보면 저자가 리처드 도킨스를 공격하는 부분이 꽤 눈에 띄는데요, 가장 신랄한 부분은 그가 수사학으로 자신의 주장을 보완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부분입니다. 저도 도킨스의 책을 보면서 불편하게 느낀 적이 있는 부분이라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만, 문제는 이 책의 저자도 같은 함정에 빠진 듯하다는 것입니다. 도킨스의 직접적인 방식과는 달리 우회적이기는 합니다만, 근본적으로 수사학으로 주장을 강화하는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이죠.


 유사과학적 소재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사실인데요, 본래 이런 부분을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저입니다만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능숙한 글솜씨와 적당히 선을 지키는 저자의 태도 덕이었던 것 같네요. 금을 밟기는 해도 금을 넘지는 않는다고 할까요? 지향성까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지적하는 문제점을 보는 것으로 충분히 흥미로웠던 책이 아닌가 합니다. 다만 아무리 봐도 책의 제목은 책의 내용을 잘 반영하지 못했다고 해야겠어요. 또 각 챕터 마지막의 '유물론자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뺐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본문의 내용과 동떨어진 뜬금없는 것이 너무 많았고 어거지처럼 느껴지는 것도 있었거든요. 대주제에 충실하기 위해 무리인 것을 알면서 고집하게 된 부분이 아닌가 싶어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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