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너리스 1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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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커 상 수상작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성향의 작품이 많아서인지 인지도만큼 인기도 높은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수상작이 알려지면 이름은 기억해두는 편이고요. 2013년에 상당히 젊은 작가가 황도 12궁에 정교하게 짜맞춘 소설로 부커 상을 수상했다는 기사를 봤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 작품 '루미너리스'가 2년이 지나 출간되었네요. 분량이 상당한 책이니 번역도 오래 걸렸나 싶은 생각도 해봅니다. 1권이 520쪽, 2권이 670쪽 정도 되니까 합치면 1200쪽 정도 되는군요. 1, 2권 분량이 꽤 차이가 나기도 하는데요, 구조상 1부, 2부를 각 한 권씩 만들었기 때문이더군요. (1권이 2권보다 500원 싸기도~ )

 

 이런 소설의 경우 장르를 딱 규정하기에 쉽지 않습니다만, 플롯상으로 보면 미스터리라고 봐야할 듯 합니다.. 크로스비 웰스라는 남자가 시체로 발견되고 그 집에서 금덩어리가 발견되면서 사건이 시작되거든요. 사건과 관련된 11명의 남자가 호텔에 모여 그것을 해명하려 하는데요, 그 자리에 무디라는 젊은이가 우연히 끼어들고 그에게 자신들이 아는 사건의 면모를 설명해주는 것이 1부입니다. 이 12명은 황도 12궁으로 상징되며, 이 외의 인물들도 행성으로 상징되어 서로 얽혀들지요. 각 챕터의 소제목도 그런 얽혀듬을 반영하고 있고요.



 이런 설정으로도 예상되겠지만 각 인물의 성격은 점성술에 맞추어 설정되고 있습니다. 인물과 인물의 만남도 점성술에 따른 운세와 관련하여 전개되는 듯 하고요. 그런데 문제는 제가 점성술을 전혀 모른다는 점이겠습니다. 작품 내에서 각 인물의 성격이 인물의 출신 및 과거와 관련되어 일일이 서술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점성술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이 작품을 읽을 때의 재미는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어쨌든 인물의 성격 뿐 아니라 전개까지 점성술과 연계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아무래도 서구인들은 우리보다 점성술에 익숙하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더 큰 매력을 느꼈을 것 같다는 추정도 하게 되는데요, 바꿔 말하자면 비서구권 독자에게 어필하기에는 장애가 될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이 부분이 크다고 느껴지는 것은, 이 책이 미스터리 플롯을 사용하고 있긴 합니다만 전형적인 미스터리 구성과는 꽤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1권을 읽어가면서 저는 1부가 추리 소설에서의 문제편에 해당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었습니다. 특히 무디라는 인물의 등장은 소위 앉은뱅이 탐정의 역할을 기대하게 만들기도 했고요. 하지만 2부로 넘어가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무디가 자기 입으로 말하기도 합니다만, 등장인물들은 사건을 총체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나 능력이 없습니다. 그저 인물들이 서로 교차되어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독자가 인물들의 관계를 회상식으로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조금씩 조금씩 과거가 밝혀지면서 그것을 이해해가는 과정이 흥미를 주기 때문에 후반부로 갈수록 재밌다고 느껴지기는 합니다. 무디가 재판에서 변호사로 활약하는 장면도 흥미롭고요. 다만 이 재판이 해결과는 거리와 있기 때문에 클라이맥스의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서사적으로 대단한 재미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이 소설은 1860년대 뉴질랜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서사적이리라 예상하게 됩니다만, 실제로는 그런 성격은 약한 편입니다. 작품 뒷부분에 가서야 깨닫게 됩니다만, 어쨌든 플롯 자체를 보자면 간명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개 과정에서 아귀가 잘 맞지 않고 우연도 많습니다. 영적인 요소까지 가미되니 말입니다. 추정컨대 그런 느슨함을 필연적으로 묶어주는 것이 점성술에 기반한 구조가 아닐까 싶은데요, 말했다시피 저는 점성술에 무지하다보니 이것이 그대로 아쉬움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더군요.



 구조가 서사를 뒷받침한다고 말했습니다만, 다시 생각해보니, 구조를 위해 서사가 활용되었다는 것이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가 구조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는 저같은 둔감한 독자에게도 느껴질 정도였습니다.(저는 어쨌든 서사, 하다못해 묘사라도 있어야 반응하는 타입이거든요.) 황도 12궁의 원형에 기반하여 소설은 나선형으로 상승하여 완성되어 갑니다. 각 챕터의 제목은 물론이고 점차로 줄어들어가는  분량, 별자리와 행성으로 상징되는 인물의 묘사와 그 교차로 인해 발생하는 이벤트들까지, 치밀하기 그지없지요. 한 장 분량으로 완벽하게 수렴되는 책의 최종 1장은 구조에 반응하는 이들에게는 대단한 짜릿함을 안겨주었으리라 예상됩니다. 다만 제가 구조에 반응하는 타입이 아니었다는 게....


 덧붙이자면, 기본 플롯은 간단할지 몰라도 세부적으로 묘사된 인물과 사건의 얽히고 섥힘은 복잡하기 그지없습니다. 이 책은 친절한 편인 것이, 권두에 등장인물들을 몰아서 소개해주고 있고 각 챕터 앞에 별자리와 행성의 만남을 그림으로 일일히 보여주고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좀처럼 사람 이름을 기억 못하는데다 책을 찔끔찔끔 나누어 읽는 저같은 독자에게는 꼭 필요한 서비스죠. 그래도 헷갈려서 결국에는 점성술에 대해 인터넷에서 검색해보고 나름 표까지 만들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만~  아무래도 한번 더 읽어봐야 놓친 매듭들을 다시 묶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여러모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14년 수상작인 The Narrow Road to the Deep North와 15년 수상작인 A Brief History of Seven Killings는 그러면 내년, 내후년에 나오려나요? 둘 다 역사물의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더 기대가 되는데요, 빠른 출간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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