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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교과서 밖으로 나온 한국사 3종 세트 - 전3권 - 근현대 + 선사~고려 + 조선 ㅣ 교과서 밖으로 나온 한국사
박광일.최태성 지음 / 씨앤아이북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최태성 님은 EBS 방송에서도 꾸준히 인강을 해주고 계십니다만 저에게는 교양 프로그램인 '역사저널 그날'의 패널 분으로 더 익숙하네요. 사근사근하고 포근한 말투가 기억에 남는 분인데요, 이번에 교과서가 아니라 교양서로 책을 내셨네요. 물론 제목에서도 드러나다시피 교과서에 근접하는 교양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런 책을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교육자로써보다 인문학자로써 보람차고 흥분되는 일이었으리라는 예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잘 보면 최태성 님뿐 아니라 박광일 님께서도 참여하신 공저작입니다만 책의 띠지에서부터 최태성 님의 이름을 크게 박아 놓아서, 어느 정도 인지도에 기대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고 책을 급하게 빨리 빨리 만들어낸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상당한 준비를 거쳤겠다 싶은 부분이 있어요. 오히려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한 기획의 성격도 엿보일 정도입니다. 일단 선사부터 고려까지 1권, 조선 1권, 그리고 근현대사 1권으로 3권의 분량인데요, 두께도 제법 됩니다만 올컬러로 만들어져서 보기에 화려하기도 합니다. '교과서 밖으로...'라는 제목이 내용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는 1권 첫머리부터 확연합니다. 구석기 편을 시작하면서 주한미군 그렉 보웬이 전곡리에 한탄강변에서 특이하게 돌멩이를 발견하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뗀석기의 첫문을 이런 식으로 열어주는 것이지요. 책은 이렇게 각 단원을 일화 소개로 시작하고 있고요, 중간 중간에도 현재와의 연결점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이야기와 사진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진만 봐도 내용상으로나 분량상으로나 교과서에서 보기 힘든 정도로 다채롭습니다.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교과서는 핵심적인 사실들만 딱딱 요약해서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죠. 이렇게 하면 분량은 줄어들지 몰라도 오히려 역사의 재미를 깨닫지는 못하게 되는 역효과를 낳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서사를 사랑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역사란 사실 꽤 재밌을 수 있는 과목인데요, 그것을 화석화시켜서 맛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이 교과서이고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것이죠. 물론 그런 방식도 의미가 없지는 않겠습니다만,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에게라면 몰라도 이제 막 발을 뗀 학생들에게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질 않아요. 최태성 님도 그런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껴 이런 책을 기획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관이라는 점에서 보면 책은 무난한 중립적 태도를 잘 유지하고 있더군요. 어쨌든 이 책의 대상독자가 중고등학생이라는 점에서보면 교과서의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어려운 일이겠지요. 그것이 적절하기도 할테고요. 개중 독특한 것으로 기억나는 것은 것이 있다면 가야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보통 삼국이 고대 국가로 발전한 것에 비해 가야는 연맹체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에 가야사를 배제하고 삼국시대라고 칭하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저자는 체제상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발달 수준이나 문화사회적 성취에 있어 가야가 빠져야할 이유를 볼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4국 시대라고 칭해지는 것이 더 적절하리라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비중상으로도 상당한 분량을 가야사를 소개하는데 할당하고 있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도 이전부터 의아하게 생각했던 부분이고 해서 충분히 공감이 가는 주장이었네요.
인상에 남는 다른 부분은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소개되는 유적지들이었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가장 강하게 체감하게 되는 것은 역시 유적과 유물을 접하는 순간이겠지요. 호오가 갈리더라도 역사 수업에서 답사가 빠지면 안되는 이유기도 할텐데요, 이 책에서는 마지막 부분에 꼬박꼬박 할당된 유적지 소개를 통해서 현대에 살아있는 과거의 흔적들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가장 비교과서적인 설명을 통해서 오히려 역사에 대한 흥미를 끌어내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조선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그렇다쳐도 근현대사가 그에 버금가는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저로써는 아직도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물론 시간적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역사가 사료면에서든 직접성 면에서든, 역사의 교훈이라는 면에서든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어색함을 느끼는 것은 이것이 교육과정 개편을 거쳐오면서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형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전쟁 이후의 빈약한 서술과 비견해보면 부자연스러움이 더 크게 다가오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 책도 교과서의 분량 배분을 따라가고 있습니다만, 내용적으로는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더군요. 책이 현재의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역사의 흔적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에, 근현대사 파트에서 그 효과가 더 부각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현대사 부분만 떼놓고 봐도 내용이나 분량상 좀 더 신경을 써서 비중을 두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고 말입니다.
책장에 꽂아놓고 오래 보관하게 만들어낸 외형과 내용이기에 오히려 드는 생각은 이 책이 어떤 사람들에게 가장 호소력을 가질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말하기 위해서는 필요 최소한의 분량과 글자 크기(?)로 만들어진 책이겠습니다만, 이런 형태에 매력을 느끼는 학생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반면 기본적으로 중고교학생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제목과 형태라서, 역사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이 택할 확률도 낮을 것 같고요. 최태성이라는 스타 강사의 타이틀을 강조한 책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인상을 주리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결국 학부모들이 자식 교육용으로 사놓고 책장에서 구색용으로 잠드는 책이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됩니다. 한정된 목적에서 보자면 용선생 시리즈와 같은 형태가 훨씬 기능적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공들여 만든 책이니만큼 역설적으로 걱정과 아쉬움이 든다고 할까요? 기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