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의 식채
미부 아츠시 원작, 혼죠 케이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웹툰이 대세가 되어서인지 단행본 만화는 확실히 줄어든 것 같습니다. 단행본 만화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이 일본만화인 게 사실인데요, 요새 제 입맛에 맞는 만화를 보기 힘들어진 것을 보면 일본의 만화 시장도 그다지 좋지 않은 분위기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워낙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일본만화입니다만 그 중에서도 음식을 소재로 한 만화는 차고 넘치게 나왔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중파든 인터넷 방송이든 먹방이 차고 넘치고 있는데요, 역시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 먹는 것에 관심을 더 가지게 되는 것이겠지요. 인간의 기본 욕구에 속하면서도 경제력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이 먹는 것이니 말입니다. 이 '문호의 식채'라는 만화는 음식이라는 소재에 일본의 근대 시기의 작가들의 이야기를 섞어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신문 기자가 특집 기사를 쓰면서 음식과 관련된 문호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등장하는 문호는 6명인데요, 나쓰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다자이 오사무는 아는 인물이었습니다만, 마사오카 시키, 히구치 이치요, 나가이 카후는 모르는 인물이었으니 반반인 셈이네요. 소세키 편에서는 소설 '도련님' 속에 등장하는 키요라는 여성을 통해서 그가 우려했던 가짜 근대화에 대한 화두를 끌어내는군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속의 고양이가 일본주가 아닌 맥주를 먹고 익사하게 되는 것도 그러한 화두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을 하는데요, 그럴싸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키 편은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였습니다. 척추에 병이 생겨 거동을 하지 못하게 된 그가 자기 방은 커녕 자기 몸에 갇혀 지내게 된 말년, 자신이 먹고 싼 내용을 집요하게 일기장에 담아냈다는 것은 즉각적으로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습니다. 살아있고자 하는 것은 동물적인 생존 본능이지만 그것을 먹는다는 행위만큼 잘 실현해내는 것은 없으니까요. 

 이치요는 알고 보니 제가 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작가였는데요, '유리가면'이라는 만화에서 등장하는 '키재기'라는 작품이 그녀가 집필한 것이었더군요. 빈곤한 여성이었다는 이중고 속에서 일찍 삶을 마치게 되는 그녀가 약자의 모습을 비춰낸 것이'탁류' '키재기' 등의 작품이라고 하는데요, 따로 접해보고 싶어지는 소설들입니다.



 기후 편에서는, 말년이 되어서도 돈까스 덮밥이나 비프 스튜처럼 기름진 음식을 푸짐하게 먹었던 것은 실은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을 반추하는 수단으로써 음식을 대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재밌는 가설을 던져보고 있네요.

 오사무 편에서는 작품 속의 그가 실제의 그의 모습과 어떻게 다를까 하는 점을 더듬어 봅니다. 뜬금없는 이야기입니다만, 사람이 산다는 것이 늘 가까운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 흘러가는 것이라고 합니다만, 위대하다 칭해지는 이들은 주변 이들에게 더 큰 빚을 지며 살아가는 일이 잦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군요. 행동으로 삶을 남긴 이들은 보이지 않지만 글로 삶을 남긴 이들은 여전히 후세에 영향을 주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아이러니라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그렇기에 인간이 문명에 집착하는 것이겠지 하는 생각도 드네요.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원작자와 만화가 모두 처음 들어본 이들인데 왠지 그림체는 익숙하네요. 극화풍의 작화는 근대라는 시기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잘 맞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보고요. 인간의 원초적인 기억 속에 묻혀있는 음식에 대한 추억과 삶에 대한 집념을 잘 얽어낸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다만 여기 등장하는 음식들은 대부분 생소했는데요, 시대적 배경도 있고 보니 일본의 전통적인 음식이 다수 등장해서였던 것던 것 같네요. 작품 속 곳곳에 등장하는 일본의 지명과 더불어 일본인에게는 더 호소력이 있었을 아우라를, 한국인인 저로써는 놓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아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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