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류시화 시선집
류시화 지음 / 열림원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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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시화 시인 하면 제게는 군 시절에 읽었던 두 권의 시 엮음집으로 기억됩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두 권이지요. 본래 시를 이해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편이라 읽은 시집이 손꼽을 정도입니다만 아마도 군 시절의 특수한 상황 덕분에 이 시집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시집이라기보다 잠언집에 가까웠기 때문에 정신적인 위로를 얻기에 적합했던 것이겠지요. 막상 류시화 시인이 직접 쓴 시는 읽어볼 기회가 없었는데요, 이렇게 그의 시 모음집이 새롭게 출간되어 만날 기회를 얻게 되었군요. 


 그는 다작 시인은 아닌가 봅니다. 등단한지 35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간 출간한 시집이 의외로 3권 밖에 되지 않네요. 그래서 선집도 그다지 많지 않은 분량입니다. 시의 이미지는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것과 일치하네요. 불교적이고 명상적인 작품들이 많았어요. 그 외 연가나 자전적인 작품도 꽤 있었고요. 흥미로운 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쓰여진 시가 한권에 모여있다보니 시간이 가면서 변해가는 시인의 의식이 엿보인다는 점이었네요. 


 초기작은 확실히 자기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작품이 많았어요.


 민들레 풀씨처럼 /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게 / 그렇게 세상의 강을 건널 수는 없을까 / 민들레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네 / 슬프면 때로 슬피 울라고 / 그러면 민들레 풀씨처럼 가벼워진다고

 [민들레] 


 후기작은 산문시라고 느껴질 정도로 길어진 작품이 많네요. 점점 더 현실을 구체화하여 표현하여 관념성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인상입니다.


 아, 나는 알지 못했다 / 나의 증명을 위해 / 수많은 비켜선 존재들이 필요했다는 것을 / 언젠가 그들과 자리바꿈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 한쪽으로 비켜서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 비켜선 세월만큼이나 / 많은 것들이 내 생을 비켜 갔다 / 나에게 부족한 것은 / 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였다 /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잠깐 빛났다 / 모습을 감추는 것들에 대한

 [버려진 것들에 대한 예의]


 자신에게서 살짝 비껴서서 외부를 통해서 자신을 비춰보는 시가 마음에 듭니다. 담담하게 읽어가며 고개 끄덕일 수 있는 시들이 좋네요. 시를 어려워하는 저에게도 충분히 다가오는 작품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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