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류시화 지음 / 열림원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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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 전에 읽어서 읽은 것조차 잊어버리는 책이 종종 있습니다. 이 책을 손에 들면서 '초판이 나온 것이 97년이니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서 다시 나올 정도로 반향이 큰 책이었구나' 생각했는데요,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 유명한 책을 아직까지도 못 읽었나 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한편 한편 읽어가다 보니 내용이 스물스물 기억이 나는 것입니다. 언젠가 읽었던 책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죠. 어떻게 이렇게 잊어버리고 있었나 어이없기도 합니다.

 

 

 류시화 시인의 책은 시든 수기든 잠언처럼 쓰여집니다. 아주 직접적으로 마음에 와닿지요. 이런 솔직함은 복잡한 마음을 달래기에는 최적입니다. 그 복잡한 틈을 파고들어 위안을 주니까요. 심란하기 그지없던 군 시절,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두 편의 시 선집이 준 위안은 아직도 잊을 수 없을 정도지요.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작가는 지금까지도 매년 인도로 떠날 정도로 인도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가 인도에서 겪은 에피소드들과 단상을 모아낸 책이 이것이지요. 소소한 해프닝처럼 느껴지는 사건부터 깨달음처럼 다가오는 여정까지 무게감은 다릅니다만 작가의 근본적인 애정만큼은 일관되지요. 거지조차 깨달음을 추구하는 곳, 작가가 보는 인도의 모습은 명상의 땅인 것입니다. 이 책은 인도인의 깨달음 중에서도 스스로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 분별이라는 것을, 그것을 버림으로써 평안한 마음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을 주로 실어내고 있습니다.

 

 

 다만 현실인지 가상인지 알 수 없는 에피소드가 섞여들어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네요. 또 인도의 모든 사람들이 작가에게 던지는 깨달음의 말은 진정한 깨달음인지, 아니면 인도 특유의 논리체계가 만들어낸 화술인지 모호하기도 합니다.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하는 자가 아닌, 이미 깨달음을 얻은 자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그려지기에 의심의 마음이 생겨나 버린 것이죠. 한편으로, 개인의 마음은 평온할지 모르지만 그 평온함과 사회의 대비가 너무 크다보니 올바름에 대한 의혹도 떠오릅니다. 당시 사회적으로 나타났던 인도에 대한 신비화 유행을 떠올리면서, 결국에는 이 책 역시 작가의 눈을 통해 만들어진 신비주의적 환상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유사한 에피소드를 반복하여 얻어낸 간결함은 이런 면에서는 오히려 독이었네요.

 

 

 인도를 가보지 않은 저로써는 사실 알고 느낄 수 없는 바가 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작가도 개정판 머릿글에서 책의 인도는 '내'가 경험하고 '내' 눈으로 본 세계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고요. 저에게는 잠깐 스쳐가는 여우비 같았던 이 책 속 인도의 모습이 누군가에겐 여름철 소나기처럼, 향그런 봄비처럼 보였을 수도 있을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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