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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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읽어보게 된 이언 매큐언의 작품이네요. 그의 소설 '속죄'를 원작으로 한 영화 '어톤먼트'는 상당히 감명깊게 봤습니다만, 막상 그의 소설을 글로 접해보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영화를 통해서도 그가 인간 심리의 복잡함을 섬세한 묘사로 그려내는 작가이리라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작은 그런 예상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작품이었고요. 59세의 여판사 피오나를 주인공으로 삼아 작가는 한 장면 한 장면 갈고 닦은 표현력을 보여주더군요. 이성의 방패로 무장했으나 남편의 부정이라는 위기에 크게 흔들리는 노년에 접어드는 여성의 심리 묘사는 우아하다는 말이 맞아떨어질 것입니다.

 

 

 제목이 드러내듯 아동법과 관련된 사건이 작품의 중심에 놓입니다만, 59세라는 미묘한 나이와 남편의 부정이 야기하는 흔들림은 그 이상의 무게로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평생 아이도 낳지 않고 법에 헌신해온 피오나에게는 법과 남편이 삶의 기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 중 남편에 대한 믿음에 금이 가버린 것이지요. 모든 동료들이 인정할만큼 완벽하게 우아한 판결문을 써낼 수 있는 그녀는 이성적으로 완성된 인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평생 몸에 배어온 교양 역시 철저한 자기 통제로 이어져 도무지 흠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그녀입니다만, 이성과 습관도 잃어버린 신뢰가 만들어내는 불안감을 통제하는 데는 역부족이지요. 이런 불안함은 그녀 생활의 다른 한 축인 법으로도 전이되어 갑니다. 종교적 이유로 수혈받기를 거부하는 소년의 사건에 평소에는 그러지 않았을 정도의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지요.

 

 

 소년의 이름이 애덤인 것이 의미심장합니다. 최초의 인간의 이름을 가진 이 소년은 총명합니다만 여전히 순수하고 그렇기에 어리석기도 합니다. 피오나는 이 소년에게서 평생 가질 기회가 없었던 아들의 모습을 겹쳐보기도 합니다. 소년 특유의 치기를 느낀데다 미래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느낀 피오나는 소년이 살고 싶어한다는 것을 느끼고 그의 종교적 신념을 강제로 빼앗기로 결정하게 되지요. 애덤의 원망을 감수한 결정이었습니다만, 놀랍게도 소년은 개종에 가까운 모습으로 피오나에 대한 감사와 애정을 표합니다. 마음 속 종교의 자리에 피오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세운 것이지요. 하지만 피오나는 '어른스럽게' 스스로의 불안함이 객관성을 잃게 만들고 있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소년의 무방비하면서도 전적인 애정은 소년에게나 자신에게나 옳지 않다고 느끼고 거리를 두고자 합니다. 다만 그 결과는 너무나 예상과 달랐지요..

 

 

 피오나의 행동은 냉정히 보아 상황 안에서 가장 현명하고 빈틈없는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소년을 절망으로 몰아간 것은 아주 잠깐 드러냈던 피오나의 흔들림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어떻게든 스스로를 통제하려 했던 의지와 지성이 소년을 상처입힌 것이지요. 다만 그녀가 , 누구라도 미리 그것을 깨닫고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운명적으로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아이러니가 낳은 안타까움은 속죄의 그것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때문에 이 책의 '칠드런'은 애덤보다는 오히려 피오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간결하게 갈고 닦은 문체에 간명한 내용 전개 덕에 쉽게 따라읽어갈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강렬하게 파고들지는 않습니다만 잔잔하게 여운을 남겨준다는 소감입니다. 예상 이상으로 감상적인 작품이었다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그리고 중간중간 실린 소년법 관련 판결이라던가 음악에 대한 인물들의 취향이 곁들임 역할을 하는데요, 영국 법조계라던가 상류층의 삶의 모습을 추정케 하는 서술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것처럼 과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내용과 관계없이 사족을 달자면 표지 디자인은 의문투성이입니다. 저 젊은 여인은 도대체 누구인가요? 혹시나 해서 해외판의 표지들을 살펴보았습니다만 다들 내용을 충분히 담아내는 것들이었는데 말이죠.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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