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제법 오랜만에 읽게 된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입니다. 그래봤자 우는 어른, 울지 않는 아이 이후로 잠깐 쉰 것이니 2년도 안된 것이긴 하군요. 사실 딱히 그녀의 소설에 대단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기억에 남을만한 인상을 받은 적이 없는데도 이렇게 챙겨보게 되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신기한 부분입니다. 그녀의 소설이 가지는 독특한 분위기가 가끔씩, 하지만 저항할 수 없게 생각나는 특별한 음식에 대한 유혹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늘 변함없는 맛일지라도 어떤 순간이 되면 한번씩 찾아보게 되는 음식 말이죠.


 이번 작은 무엇보다 그 두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보통 차 몇잔 마시면 다 읽을 수 있는 두께의 소설이 일반적이었던데 비해, 이번 책은-판형은 작아도-600쪽에 육박하니 말입니다. 알고 보니 이 책은 월간지에 4년 넘게 연재되었던 소설을 모아서 낸 것이라더군요. 그러니 범상치 않은 두께 뿐만 아니라 짤막짤막한 챕터가 독립적으로 전개되는 구성도 이해가 됩니다. 이야기는 한 일가의 가족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네요. 23개의 챕터가 각기 다른 시대, 다른 가족 구성원의 이야기를 펼쳐내니 연작소설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에쿠니의 소설 속 등장인물이 다섯 손가락 안쪽에 들어갔던 것을 생각해보면 색다른 부분이기도 합니다. 시간도 왔다갔다 하고 이야기도 제각각이니 보니 무리해서 일일이 기억하고 이해하려 들면 복잡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는데요, 사실 에쿠니의 소설을 그렇게 읽으면 무조건 지는 것이지요. 최대한 머리를 비우고 눈에 들어오는 활자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족하리라 생각됩니다. 언제나처럼 그녀의 소설에서는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분위기가 중요한 것이니까요.

 일반적으로 비일상처럼 보이는 것을 독자들이 일상으로써 납득하게 만드는 것이 에쿠니 가오리의 특기인데요, 때문에 불륜과 가정 불화 같은 일일 드라마 속 소재들이 쏟아져나와도 신파처럼 느껴지지 않고 깔끔하게만 느껴지죠. 한걸음 더 나가면 이것과 저것을 구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끼게 만들고요. 때문에 그녀의 소설에 개인은 있습니다만 사회는 없습니다. 만약 사회가 등장한다면 그것은 개인을 뒤흔드는 악-에쿠니의 소설에서 선악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유일하게도-으로 묘사됩니다. 3남매가 학교에 갔다가 상처받고 자퇴하는 이야기가 첫번째 에피소드인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요. 또 개인의 심리 관계에만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 현실의 문제도 배경 속에 최대한 희석시켜버리지요. 때문에 연애나 가족 간의 관계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은 있어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번 작품 역시 이것을 포함한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몇 가지 기법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런 점을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겠고 이런 점을 그녀의 소설이 가지는 단점으로 지적하곤 합니다만, 한편으로는 이것들이야말로 그녀 작품의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몰입하여 그녀의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완벽하게 현실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을 느낄 수 있거든요. 그리고 책을 덮으면 깔끔하게 현실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입가에 쓴맛이나 단맛은 잠깐 남을지라도 길게 끌지는 않습니다. 소설을 읽게 만드는 동인은 여러가지이겠습니다만 많은 이들에게 있어 현실을 벗어나는 해방감은 분명 그 동인의 하나지요. 그런 면에서 이번 작품 역시 에쿠니의 소설을 아는 이들에게는 아주 만족스러운 소설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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