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미스터리나 추리 소설을 상당히 좋아하는 저입니다만, 제 취향에는 일본 소설이 잘 맞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서구권 쪽 소설은 그닥 많이 읽어보지 못했고 만족한 작품도 많지 않습니다. 그런 제가 이 책에 눈이 가게 된 것은 광고 문구의 역할이 컸습니다. 북미에서 6초에 1권씩 팔린 책이라니, 재미는 검증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죠. 때마침 스릴러 장르에 목말라 있던 참이라 장르적으로도 관심이 고조되어 있었고요.

 소설은 3명의 여성이 각자 자신의 시각으로 돌아가며 이야기를 펼쳐냅니다. 서구권 스릴러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쓰여진 소설이 상당히 많은 듯합니다. 스릴러의 기법이 다양합니다만 독자에게 작품 전체의 구조를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은근히 흘려보내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 하는데요, 이 소설의 방식은 그런 목적에 잘 봉사하고 있다고 보이네요. 재밌게 보았던 길리언 플린의 소설도 이런 구성을 택하고 있던 것을 생각해보면 작가도 그런 효과를 잘 인식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작품으로 돌아가서 3명의 여인은 각각 레이첼, 메건, 애나입니다. 가장 중심에 있는 인물은 레이첼이고요, 작품도 주로 그녀의 시각을 따라갑니다. 불임이 계기가 되어 남편과의 사이가 악화되고 결국 이혼한 여성이지요. 알콜중독으로 고생하고 있고 실직까지 하여 친구집에 얹혀사는 최악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을 빼앗아간 인물이 애나입니다. 거의 계획적으로 레이첼의 남편을 빼앗고 그의 아이까지 낳아 레이첼이 살던 집에서 행복하게 사는 듯 보이는 그녀입니다만 출산 이후에 자신이 레이첼을 닮아간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지요. 마지막으로 애나입니다. 레이첼이 직장에 다니는 척 매일 타고 다니는 열차에서는 애나의 집이 아주 잘 보입니다. 레이첼은 애나와 남편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감정을 이입하며 대리만족하곤 했지요. 그런데 바로 그 애나가 갑자기 실종되었다가 시체로 발견되는데서 사건이 펼쳐집니다. 과연 살인범은 누구인가? 그것이 작품을 이끄는 동력이지요.

 작품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살인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이지요. 작가는 의도적으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 의심스러운 구석을 심어놓습니다. 애나가 불륜관계를 맺었던 상담의사? 어쩌면 그것을 눈치챘을지도 모를 덩치크고 성급한 애나의 남편? 애나의 과거 속에 숨어있던 옛 남자? 아니면 애나와의 묘한 연관 관계가 드러난 레이첼이나 레이첼의 남편? 그도 아니면 알콜 중독 탓에 사건 당일의 기억이 모호한 레이첼 자신? 이렇게 많으도 뿌려놓은 떡밥이 제법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이 수렴되어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은 단순한 편입니다. 끌어가는 과정도 평이한 편이고요. 다만 범인이 밝혀지고 그 범인이 징죄되는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인물의 성격들은 꽤 흥미롭지요.

 여기서 두번째 측면이 드러납니다. 이 소설은 거의 심리소설로 보여질 정도로 레이첼의 심리를 묘사하고 그녀의 행동을 그려내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전남편에게 버림받고 알콜 중독자가 된데다가 실직까지 한 레이첼은 말그대로 최악의 상태입니다. 그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면서도 막상 용기는 내지 못하고 안주하는, 그리고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인으로부터의 구원만을 갈구하는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녀의 무기력함과 어리석음은 동정과 동시에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은 인간의 연약함을 잘 드러냅니다. 애초에 그녀가 애나의 살인범을 찾고자 나선 것도 아줌마적 오지랖과 구원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합쳐진 것이었으니까요. 레이첼만큼 많이 묘사되지 않는 애나조차도 그 이기심과 불안정암이 멋지게 표현되어 작가의 역량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특히 작품 끝에 드러나는 레이첼과 애나의 행동과 심리는 앞서의 설득력 있는 묘사가 없었다면 자극이 반감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비관적인 묘사가 만들어내는 작품 전체의 암울한 분위기도 시선을 끄는 부분이 있고요.

 확실히 이 소설의 재미는 후자 쪽에 놓입니다. 전자보다 후자 쪽이 기술적으로도 훨씬 뛰어나게 느껴지고요. 다만 이 작품을 스릴러로 기대하고 읽는 저같은 독자에게는 다소 아쉬움이 느껴지는 소설이네요. 스릴러로써의 긴장감은 크게 부족하다고 보이거든요. 심리묘사는 흥미로운 구석이기는 해도 스릴러로써의 부족함을 상쇄하고 남음이 있는 수준이라고 보이지는 않아요. 여러모로 대단히 재밌는 소설이라 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대중으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제 눈에 보이지 않는 매력이 있었다는 것일까요? 하긴 그간 제가 예측했던 것과 정반대의 판매량을 보였던 책도 적지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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