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앵무새 죽이기'는 정말 어릴 때 읽은 책이군요. 아마도 초등학교 때 읽었던 것 같은데요, 책을 덮고 상당히 가슴 뜨거웠다는 기억만 남아있을 뿐,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그 동안에도 계속 출간이 되고 있는 책이었을 것 같습니다만 오랜 기간 잊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네요. 그러다가 우연히 기사를 통해 '파수꾼'이라는 후속작이 출간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그 속사정이 깔끔하지는 않더군요. 사실상 이 작품은 '앵무새 죽이기'보다도 먼저 쓰여졌는데 그 일부에서 파생된 작품인 '앵무새 죽이기'가 너무나 큰 호응을 얻자 작가는 두려움에 절필을 택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절대 이 작품을 출간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최근에 와서야 마음을 바꾸었던 것이죠. 다만 그 과정에 변호사 내지 출판업계의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은 꺼림직한 일입니다만... 아무튼 이 작품이 출판되면서 자연스럽게 '앵무새 죽이기'도 다시한번 관심을 받게 된 것이고요.


 책을 다시 읽기 전에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가 곰곰히 떠올려봤었더랬는데요, 어린 소녀의 눈을 빌려서 그려진 작품이었고 작품의 주인공인 아버지는 물론 오빠도 상당히 올곧은 인물이었던 것 같다는 정도가 생각나더군요. 그리고 흑인 인권과 관련하여 고군분투하는 변호사인 아버지의 활약이 주된 스토리였다는 정도도 떠오르고요. 이러니 거의 새책을 읽는 기분이겠다 싶었는데 한장한장 읽어가다보니 신기하게도 서서히 기억 속에서 내용이 떠오르더군요. 젬 오빠라는 캐릭터를 내가 아주 좋아했다는 것부터 옆집사는 부 래들리에 대한 뿌리없는 두려움에 왠지 모르게 공감했던 것, 캐럴라인 선생님의 꽉막힌 태도에 화가 났던 것 등이 서서히 생각난 것인데요, 오히려 아주 어릴 적의 기억은 각인이 되어서 잘 사라지지 않는가보다 싶습니다. 5~10년 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은 정말 새까맣게 생각나지 않아서 다시 읽고도 정말 내가 이 책을 읽었는지 고민했던 적이 있으니까요. 어릴 적의 경험, 특히 독서가 얼마나 깊게 각인되어 남을 수 있는지 다시한번 깨닫게 되기도 하네요.


 처녀작이라도 전혀 그런 티가 나지 않는 작품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그런 작품이 훌륭하다는 점도 깨닫고 있습니다만, 이 '앵무새 죽이기'도 그렇네요. 수월하고 매끈하게 써내려가면서도 어린 소녀의 투명한 시각을 납득가게 표현해내는 솜씨가 상당합니다. 작가의 자전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이 작품의 생생함은 거기에 빚진 바도 크겠지요. 1930년대 남부의 극히 보수적인 사회상을 그려내면서도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가게 그려내는 인물들의 모습도 눈에 박히네요. 그래서일까요? 인상적인 줄거리와 주제의식이 부각되었던 2부보다 1부가 제게는 더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아버지가 두 자녀에게 보여주는 단단하고 올곧은 의지가 색이 바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나이가 들어버린 저에게는 이젠 그 모습도 다소 평면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정의가 얼마나 소중한지, 편견이 얼마나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하는지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만, 논리와 이성보다는 주관과 감성이 삶의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됨을 회의하고 있는 참이었으니 말입니다.


 사실 이 글을 끄적거리기 전에 보았던 다른 분의 서평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는 것도 고백해야겠네요. 이 작품을 통해 '흑인차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고 말하며 외모나 성향 때문에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던 그 분은, 그 뒤에 바로, 하지만 동성애자 결혼 합헌 판결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단언하시더군요. 글의 맥락상로도 들어갈 필요가 없는 말을, 두 번에 걸쳐 강조해서 말이죠. 물론 이 분은 반대의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덧붙이지 않았습니다만, 이 분이 명백히 모순되는 말을 2~3문장 사이에 하고서도 그것을 보지 못햇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딱히 이 분을 비난하자는 것은 아니고요, 저 역시 자주 이런 실수를 저지르고 당혹해한다는 점도 고백합니다. 다만 이렇게 '기호'가 '논리'에 앞서버리면 눈이 멀어버리는 모습을 너무나도 흔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인간의 불완전함이야 기저의 사실입니다만 그것이 수양이나 훈련을 통해서 얼마나 극복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점점 회의적이 되는 것은,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이려나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얼핏 듣자니 '파수꾼'에서는 아버지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여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고 비판도 받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어쩌면 작가가 앞서 제가 생각했던 부분을 그려냈던 것은 아닐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다소 좋지 못한 평을 듣고도 '파수꾼'을 주문해둔 이유기도 하고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