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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으로 철학하기 - 순수 저항 비판
조지 A. 던 외 지음, 윌리엄 어윈 엮음, 이석연 옮김 / 한문화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영화가 정보전달로써 가지는 지위는 유래없는 수준까지 올라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만큼 영화관련 산업도 많아졌습니다만 영화비평의 규모도 상당하죠. 특히 특정 영화가 유명해지면 그것을 소재로 한 철학서도 빠지지 않고 출간되고 있고요. 아무래도 소재가 소재니만큼 한결 재밌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나와주는지라 저 역시 자주 보는 편인데요, 이번에 헝거 게임의 마지막 시리즈 상영을 맞추어서 또다시 한권의 책을 읽게 되었네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개념을 빌려온 소설입니다만 확실히 헝거 게임에는 흥미롭게 살펴볼만한 점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여러 교수와 저널리스트들이 쓴 글을 모아놓은 이 책을 대해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뜯어볼 구성이 많은 이야기였군요. 대중오락 매체가 보여주는 예술의 양가성이나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심리, 자연계에서 볼 수 있는 경쟁과 협력의 원리, 전쟁의 정의성에 대한 논의는 예상가능한 소재겠는데요,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심리에 대한 글이 기억에 남는군요.
독일에서 '샤덴프로이데'라고 부르는 이러한 감정은 헝거 게임의 근간이 되는 개념일텐데요, 사실 책을 보면서도 헝거 게임과 같은 극단적인 형태의 유희가 유지 가능한지 의아했더랬습니다. 고대 원형경기장의 검투사들은 대부분 범죄자 내지 반역자였으므로 그들의 죽음을 정의의 구현으로 인지할 여지가 있습니다만, 헝거 게임의 참가자는 순수한 민간인인데다 소년 소녀들이니 말입니다. 저자는 그 부분에서 '탈인간화'의 전략을 소개하더군요. 즉 그들을 같은 인간이 아닌 열등한 존재, 인간이 아닌 존재로 규정하는 전략을 통해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죽은 조공인을 변종생물로 변형시키는 것이 그러한 전략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고요. 그랬기에 캣니스와 여타 인물들이 헝거 게임 안에서 자신들의 인간적 면모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체제 붕괴의 시발점이 된 것은 타당한 전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 샤덴프로이데가 인간 본성의 한 부분으로 인정된다면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할지는 정말 어려운 문제겠지요. 결국 인간 유희의 많은 부분이 약한 정도나마 샤덴프로이데에 기인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외에 도덕 운의 개념이나 선물의 사회적 기능, 게임 이론의 적용 등은 예측하지 못했던 점들을 짚어주어 흥미로웠습니다. 다양한 개념들을 소개하여 적용하면서도 지나치게 어려운 부분은 살짝 피해가는 난이도 조정 덕분에 생각보다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는데요, 얘기가 좀 셉니다만 확실히 소설보다 인문서 쪽이 변역했을 때의 어색함이 커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번역하기 어렵다는 점 외에도 영어의 문장구조가 더 복잡해지는 탓에 우리말과의 본질적인 이질성이 부각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 부분만 감안하고 본다면 생각보다 보기 쉬운 책이었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