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입은 남자
이상훈 지음 / 박하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예전 어떤 책에서인가 우연하게도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를 처음 보았더랬습니다. 다른 이도 아닌 루벤스가 우리의 한복을 입은 남자를 그렸다니 제법 충격이었죠. 일본의 화풍이 서양 그림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만큼 일본의 소재를 서양화에서 보는 일은 잦습니다만, 사실 우리 고유의 것을 보는 것은 드문 일이니까요. 그런만큼 이 그림은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되나 봅니다. 큰 인기를 끌었던 '베니스의 개성상인'도 이 그림을 소재로 한 것이었는데요, 이번에 새로운 소설이 나왔더군요. 팩션의 열기가 좀 가라앉은 뒤라 꽤 오랜만에 보게 되는 팩션 소설이기도 해서 관심이 갑니다.


 책 소개에 드러나있듯 이 책은 이 한복 입은 남자가 장영실이라는 가설을 세웁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장영실과 인연이 닿아 그의 초상화를 그렸고 그에게 영향을 받은 루벤스가 모사하여 그린 것이 현재 남은 그림이라는 설정이지요.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행기 스케치가 있습니다. 책은 다큐멘터리 PD가 박물관에서 우리나라의 비차 모형을 보고 그것이 다빈치의 설계와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하는데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역시나 그 모형을 보러 온 한 여인과 만나게 되는데요, 그 여성의 성이 바로 '꼬레아'였지요. 알고 보니 한국의 피가 섞인 이 여인은 장영실이 남긴 일지를 가지고 있었고 이것을 PD에게 넘겨줍니다. 일지의 내용이 풀려나가면서 과거 장영실의 여정이 액자 소설의 형태로 서술됩니다. 그 안에 장영실은 물론 세종대왕과 정의공주, 그리고 중국의 대항해가 정화와 다빈치가 등장하고 있지요. 장영실의 천재성과 명나라와 조선 간의 알력이 얽매이게 되면서 그가 조선이라는 무대를 떠나 정화와 함께 여정을 떠나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라 하겠습니다.


 팩션 장르를 워낙 좋아하여 많이 읽어본 편인데요, 팩션이라고 해도 논문일 수 없는 소설이고 보면 역사적 개연성보다 중요한 부분은 플롯이 짜내는 재미일 것입니다. 독자로써는 개연성과 사실을 구별하기도 어렵고 그 사실의 정확성을 확인할 방법도 없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그것을 논문의 내용처럼 고심하게 되지는 않죠. 결국 그러한 가설은 소설을 흥미롭게 풀어내는 조미료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의 아쉬운 점이 발견됩니다. 소설의 재미를 이끌어내는 실마리로써 가설을 활용하고 있다기보다 그 가설의 타당성을 논하는데 너무 많은 분량이 할당되었다는 것이죠. 1권 분량의 짧은 소설에서 이런 욕심을 부리다보니 서사로 돌렸으면 훨씬 재밌었을 부분을 서술로 처리해버리는 것이 발견됩니다. 예컨대 장영실이 사랑했던 여인이 정의공주라는 것을 밝히는 것은 액자 안에서 이루어졌어야 맥락도 맞고 더 흥미롭게 다가왔을텐데 액자의 틀에서 그것을 허무하게 밝혀버린 것은 의아한 일입니다. 굳이 남장여인이라는 가면까지 씌워놓은 이유가 뭔지 알 수 없을 정도더군요. 인물활용이 허술하다는 것은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는데요, 어릴 적 연인이었던 영실이 등장해야할 필요성이 없었다는 점이나 악역이라고 할 이상인의 허무한 변심이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 등을 짚어볼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한정된 분량에서 너무 욕심을 부린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만, 액자의 틀에서도 욕심을 부린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팩션이 스릴러와 등을 맞대고 있다는 점 때문인지 주인공과 이탈리아 여인을 위협하는 존재가 줄곧 암시됩니다만 결국 그 정체는 있는 듯하다 정도에서 벗어나질 않습니다. 그것이 후반부 학계의 보수성에 비판 내지 민족의식에 대한 언급과 결합되고 보면 주인공이 피해의식이 있는 것 아닌가 의심하게 될 정도죠. 액자의 틀을 줄이고 액자의 내부를 늘렸다면 이렇게까지 아쉬운 부분이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았을텐데 생각해봅니다.


 발상이나 소재는 재료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그 소재를 얼마나 맛있게 요리하느냐가 아닌가 합니다. 그것은 팩션처럼 재료가 중요한 소설도 벗어날 수 없는 경계인 것 같네요. 차라리 분량을 더 늘려서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냈더라면 훨씬 좋은 소설로 완성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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