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고병권 님의 책은 니체에 대한 책을 읽은 후로 10년만인 것 같네요. 까다로운 니체 철학을 수월하게 풀어낸 덕에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이번에 읽게 된 책은 철학 에세이네요. 철학이 늘 사람들의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저자이니만큼 이 책에서는 저자의 강점이 가장 잘 발휘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더군요. 머릿말에 작가의 그러한 성격이 잘 드러나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철학이 하늘의 별만을 보는 것이라면 그것은 한가하고 쓸모없는 일이 되어버리지만, 그 대척점에서 현실감각이 빈민을 양산하는 현실에 대한 추인이 되어버린다면 그것 역시 노예의 자기위안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책은 내내 이 인상적인 머릿말을 변주하며 흘러가고 있더군요.

 

 편안하고 담담하게 조곤조곤 들려주는 철학자의 생각은 수월하게 읽히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더군요. 현실감각을 잃지 않는 책이기는 합니다만 역시 철학자의 글답게 많은 부분 하늘의 별에 손을 뻗고 있었습니다. 별을 잡건 잡지 못하건 그러한 뻗음 자체가 유익하고 유의미할 수 있음을 섬세하게 드러내면서 말이죠. 인생을 두 번 살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비트겐슈타인의 도전적인 삶은 안주하기만을 원하는 스스로를 돌이켜보게 합니다. 네덜란드어를 전혀 모르는 프랑스인 강사인 자코토가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는 네덜란드어 학생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쳐낸 일화는, 그것을 가르쳐낸 스승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배워낼 수 있는 사람의 잠재력에 놀라게 되었습니다. 집회에 참여했다 폭력 진압에 상처를 입은 한 장애인이 그런 폭력에 경악하는 대중의 반응에 오히려 놀라워한 일화는 번히 눈을 뜨고도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과 철학자의 눈을 가진 사람의 차이를 명백하게 드러내는 일화였고요. 그런 소중한 일화들에 의미있는 철학적 주석을 달아가는 고병권 님의 글의 여정은 읽는 내내 스스로를 돌이켜보게 만들더군요. 

 

 특히 책 속에서 인용된 루쉰의 글이 기억에 남는데요, 루쉰은 제가 생각했던 바와는 달리 아주 강렬하고 적극적인 인물이더군요. 인생의 쓴맛을 그대로 담아내며 독자를 직격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괴롭하면 일단 한숨 자고 생각해보라, 여정 중에 배고파 죽을 지경이면 음식을 빼앗아서라도 살아남으라, 호랑이를 만나면 나무 위로 피해보고 그래도 결국에 죽을 지경이 되면 시체라도 넘겨주지 말라, 별수 없이 먹히게 된다면 차라리 호랑이를 깨물어보기라도 하라는 말이었습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이상을 놓치지 않는 루쉰의 균형감각이 인상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조만간 루쉰의 책도 읽어보고 싶어지는 소개였네요.

 

 책의 후반부는 좀 더 직접적이고 날이 선 현실 비판이 등장하게 됩니다만 전체적으로 일상 속에서 잊고 있는 것을 편안하게 들려주고 있는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까지 편안하게 현실 속에서 철학적 사유가 펼쳐질 수 있구나 싶어 유쾌하기까지 한 독서였네요. 누구에게나 읽어볼만한 첵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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