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백이호 옮김, 이인식 / 김영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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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약간 읽다가 말았던 책인데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제대로 읽어보게 되었네요. 디자인 분야에서 고전으로 꼽히는 교양서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번에 재출간된 모양입니다. 원제가 '유용한 물건들의 진화' 정도로 번역될 수 있을 텐데요, 한국판은 흥미를 끌 수 있도록 제목을 바꾼 듯 합니다. 일반적으로 저는 원제를 살리는 쪽을 선호합니다만, 이 경우는 제목을 잘 바꾼 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확실히 훨씬 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니 말입니다. 이 제목을 보노라면 왜 포크가 갈퀴가 둘도, 셋도, 다섯도 아닌 넷인가 의구심을 가지게 되지 않을 수 없지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제목 때문에 이 책이 만만한 상식서(?)일 것이라고 오해하게 되는 면도 없지 않겠네요. 실제로는 흥미로운 부분 못지않게 제법 딱딱하고 무거운 부분도 많은, 논문집과 같은 책이니 말입니다.

 

 제목에서 언급된 포크의 비밀(!)은 1장에서 바로 탐색됩니다. 나이프 두 개를 써서 식사하던 시기, 포크가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을 때는 이 도구가 고상치 못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다는군요. 모양도 갈퀴가 두 개였고 일자형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포크가 나이프의 기능을 가져오기 시작하면서, 음식을 찌르는 것 못지않게 얹기 편할 필요성이 생겼고, 그러기에 가장 적절한 갈퀴 수가 4개였다는 것이죠. 또 음식을 찌른 후에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갈퀴가 구부러지게 되었고요. 이런 일련의 과정 끝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부분은 '형태가 기능에 따라 결정된다'는 주장에 의구심을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도구의 형태가 하나의 형태로 귀결되어야 할텐데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죠. 오히려 물건의 기능상 결함을 반영하여 개선되어가는 과정은 하나의 진화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챕터들은 이 주장의 확대 강조를 위한 논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예시로 등장하는 물건에는 페트병, 나사, 핀과 클립, 스카치 테이프와 포스트잇, 옷핀과 지퍼 등등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아주 두꺼운 책이 아닌데도 굉장히 많은 예들이 소개되고 있어서 디자인 진화의 고고학을 감상하는 기분이 드네요. 포크 못지않게 재밌게 읽은 부분을 꼽자면 양철캔의 변화 발전 과정이었습니다. 양철캔이 알루미늄캔으로 변화하고, 캔을 따는 방식이 당겨서 따는 방식에서 눌러 따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흥미롭게 설명됩니다. 실은 한번 딴 캔을 다시 닫아 보관할 수 있는 디자인도 개발되었던 모양인데요, 당연히 공정과정이 대폭 복잡해질 수밖에 없겠지요. 기업가에게는 전혀 어필하지 못하는 발명임에도 외부적 여건을 무시하고 물체 자체의 기능 개선에만 집중하는 발명가의 사고방식이 드러나서 재밌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제법 딱딱한 책임에도 적절한 예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서 흥미를 잃지 않고 읽을 수 있었던 책입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의심조차 해보지 않았던 일상용품들의 디자인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구나 싶어 읽는 내내 신기하게 생각되었고요. 확실히 손에 닿는 범위 내에서 발견하게 되는 소소한 놀라움은 몰입감을 유지하는데 좋은 감초의 역할을 하는군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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