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런어웨이 - 도피할 수 밖에 없었던 여자의 가장 황홀했던 그날
앨리스 먼로 지음, 황금진 옮김 / 곰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어쩌다보니 런어웨이를 마지막으로 앨리스 먼로의 출간된 책 전부를 읽어본 셈이 되었습니다. 어릴 적의 루시 모드 몽고메리를 시작으로 가브리엘 루아를 거쳐 앨리스 먼로까지, 캐나다 여성 작가와의 만남은 전부 만족스러웠다는 인상이네요. 일단 감정선의 섬세한 묘사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고 거기에 대하여 각자 독특한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앨리스 먼로의 작품은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깊게 파고 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요, 짧은 글에서도 그 정도의 내공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작가의 힘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네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평범한 사람들을 주연 삼아 삶의 음영을 가감없이 드러낸다는 것, 그 와중에서도 독특한 반전으로 그 낙차를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이번 작도 전작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 첫번째 단편인 동명의 '런어웨이'부터 그런 색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살다 보면 삶이 가지는 중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거기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문득 자각할 때가 있지요. 앨리스 먼로는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모호한 언어로 그러한 사실을 섬뜩할 정도로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네요. 플로러의 운명을 그려보면서도 한편으로는 눈을 돌리는 칼라의 마지막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우연', '머지않아', '침묵'의 세 작품은 독특하게도 동일한 주인공이 등장하고 있네요. 그리고 그 세 작품을 통해서 줄리엣이라는 여성의 삶의 노정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 눈길을 끕니다. 언제나 여성 화자를 주인공으로 삼는 앨리스 먼로이지만 이런 식으로 소설들을 이어내는 것은 처음이라 여성적 시각이 더 부각되었던 같은데요, 앨리스 먼로의 소설은 확실히 상당 부분 페미니즘적 성격을 띄는 것이 사실인 듯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이야기가 담아내는 삶의 폭이 너무 넓은 것도 사실이지요. '반전', '힘'이 주는 감동은 앨리스 먼로의 작품이 단편이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사실 어떤 문학작품이든 그런 면이 있습니다만, 특히나 앨리스 먼로의 소설은 손에 잡히는 의미를 기대하고 읽으면 당황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드물 정도로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소설들입니다만, 그것은 분위기와 암시로 전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뭔가 이해하겠다는 의도보다는 마음을 열고 즐겨가며 읽으면 더 만족스러울 수 있는 소설이 아닐까 싶어요. 코드가 맞으면 신기할 정도로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