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스
어빈 웰시 지음, 김지선 옮김 / 단숨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트레인스포팅의 어번 웰시가 아주 오랜만에 신작을 냈네요. 이 책도 영화화가 되어 이미 개봉되었다는데요, 저는 이 책을 통해서 그것도 뒤늦게 알았네요. 어번 웰시의 책은 영화화가 되기에 적절한 특성을 가진 모양입니다. 사실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묘사적인 부분이 많아서 자극적인 시각화가 가능할 부분이 많으리라는 생각은 듭니다. 처음에는 책의 제목이 무슨 뜻인지 의아했는데요, 알고 보니 오물을 뜻하는 'Filth'더군요. 표지를 장식한 핑크색 되지도 그렇습니다만, 책의 내용 전체에서 쏟아져나오는 오물 덩어리들을 생각해보면 적절한 제목이라 하겠네요. 얘기가 좀 샙니다만 요새는 영화든 책이든 제목을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한글 발음으로 싣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다만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제목 같은 경우는 번역한 제목을 같이 실어주는 것이 좋지 않나 생각되기도 하는데요..

책의 주인공은 브루스 로버트슨이라는 경사입니다. '나쁜 경찰', 혹은 '나쁜 인간'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최저의 인간이지요. 1인칭으로 뱉어내는 그의 말들은 90%가 욕 내지 타인에 대한 원망, 편견, 성적인 말들입니다. 독자로 하여금 당황을 느끼게 만들 정도로 말이죠. 사실 악(惡)도 강력한 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인간이 평온하게 살 수 있을리가 없지요. 살인사건에 질병에 동료들과의 갈등에 더하여 아내는 도망가고 난리도 아닙니다. 이 인간의 역겨운 마음과 행동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이 책은 트레인스포팅과 비슷하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무한정 모든 것을 파괴해가는 인간은 당연히 자기 자신도 파괴하게 될 수 없습니다. 많은 부분은 자초한 것이라고는 해도 강력한 힘에 이끌리듯 끝이 보이는 길을 달려가는 브루스의 모습을 보다보면 그것이 남의 모습처럼 보이지가 않거든요. 갑작스레 드러내는 '인간'다운 모습들은 당혹스러우면서도 왠지 가슴을 뜨끔하게 만들지요.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인간의 본질적인 고독이 역력히 묻어나는 독백이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다만 골격을 중시하여 읽어가는 습관이 있는 저에게는 책의 많은 부분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들이었는가 회의하며 읽어가게 되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트레인스포팅과의 유사성이 긴장감을 앗아간 부분도 없지 않았고요. 제가 이미 오래전에 마크 렌턴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 책은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왔을 테지만요. 그럼에도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 사람에 대한 연민의 마음의 당위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은 여전히 인상적으로 느껴집니다. 이 책을 통해서 작가를 처음 만나는 분들께는 상당히 강렬한 한 방을 날리는 책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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