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 / 뿔(웅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캐나다 여성 작가들은 저와 코드가 좀 맞나 봅니다. 어릴 적에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강머리 앤'에 푹 빠졌었고 뒤이어 가브리엘 루아의 '내 생애의 아이들'과 '전지전능한 할머니가 죽었다'를 인상깊게 읽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마가렛 애트우드의 강렬한 작품에 반했고 말입니다. 그러다가 올해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앨리스 먼로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요, 이 작가도 캐나다 여성 작가지 뭡니까~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과 인상깊은 첫만남을 가진 후 두번째로 보게 된 책이 '행복한 그림자의 춤'입니다. 마가렛 애트우드야 다소 색깔이 다릅니다만, 나머지 작가들은 제법 공통점이 많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려내면서 그 속에서 소박하고 고집있게 삶의 진리를 탐구해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지요?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읽어가면서 다소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과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행복한...'에 실린 단편들이 간결하면서도 가볍고 경쾌한데 비해, '미움 우정..'의 작품들은 생에 대해서 좀 더 진중하면서도 다층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출간일이 '미움 우정..'쪽이 빠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왜 더 후기의 작품처럼 느껴질까 의아했는데요,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미움 우정..'이 국내 출간일만 빠른 것이고, 실제 쓰여진 것은 '행복한.,'이 1968년(하물며 처녀작이라고 하네요), '미움 우정...'이 2001년으로, 무려 30년이나 늦게 출간된 작품이었습니다! 작품의 색깔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셈이네요. 더하여 이렇게 오랫동안 작품을 계속 내왔다니 대단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공통점도 적지 않습니다. 일단 주로 여성 화자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고요, 그에 따른 시각으로 삶의 이면에서 평범하면서도 흔들림없는 진실을 드러내고자 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서사보다는 묘사가 부각되고, 특히 생동감 있는 인물의 심리상태를 그려내는데 있어 탁월한 면이 있다는 점도 그렇고요. 다만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화자가 작가인 것처럼 느껴지는 고백적인 작품들이 많았던 것 같네요. 예컨대 '작업실'은 여성 작가를 화자로 삼고, 어이없는 인물과의 불쾌한 만남을 냉소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요, 왠지 작가의 경험에 기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면이 있더군요.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떠돌뱅이 회사의 카우보이'와 (역시나)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었습니다. 비참하고 구태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아버지와 노선생의 모습을 그려내면서도 결국에는 그 속에서 따뜻한 애정과 고귀한 의지를 발견해내는 과정은, 어느 나라의 누구에게든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내용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작품의 성격이나 내용을 볼 때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은 '미움 우정..'보다는 '행복한 그림자의 춤' 쪽인 듯 합니다. 작가와의 첫만남 용으로는 후자 쪽이 더 적절했겠다 싶은 면이 있네요. '미움 우정..'은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무게감이 있어, 부분부분 만만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었거든요. (사실 번역도 '미움 우정...'은 뭔가 수상쩍게 느껴지는 부분이 적지 않았던데 비해서 '행복한..'은 더 매끈하고 자연스러웠다는 느낌입니다.) 오랫동안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온 작가의 경우, 작품의 변천사를 캐보는 재미도 쏠쏠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 가장 신작인 '디어 라이프'에 도전해볼까 하는데요, 작가의 또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지 벌써 궁금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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