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 지음, 서정은 옮김 / 뿔(웅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연말이 되니 이런저런 수상 소식이 들려오는데요,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앨리스 먼로'라는 낯선 작가더군요. 사실 저만 몰랐지 작가분께서 나이가 있으신만큼 이미 많은 작품을 내셨고, 대표적인 작품도 국내에서 꾸준히 번역출간되었기 때문에 아는 분들은 다 아는 모양입니다만.. 수상자라는 점을 제외하고도 이 작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요소가 있었는데요, 제가 개인적으로 캐나다 여성작가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점입니다. 어릴 적에 만났던 루시 모드 몽고메리를 시작으로 가브리엘 루아, 마가렛 애트우드 모두 인상적인 작품으로 제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거든요. 앨리스 먼로의 경우 단편작가라고 하니 가브리엘 루아를 생각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책의 소개를 보니 그녀는 미국작가 오 헨리의 작풍을 이어받았다고 평가받는 모양입니다.(제가 어릴 적에 또 오 헨리 단편집을 아주 좋아했다는 점^^) 단편이라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생의 페이소스를 담아낸 결말의 반전이 공통적이라서일 것입니다. 책의 제목과 같은 단편인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이 그런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가정부 일을 해온 조해너라는 수수한 여성이 2명의 소녀가 꾸민 악의없는 장난에 엮여져 큰 곤란을 겪을 뻔 했으나 예상치 못한 우연으로 전혀 다른 결말로 향해가는 과정은 확실히 오 헨리 소설의 아이러니를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앨리스 먼로의 경우,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인물 물 자신의 시각으로 세세하게 묘사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오 헨리와 아주 다르게 느껴집니다. 작가는 인간이 얼마나 복잡하고 섬세한 존재인지는 인생 본연의 아이러니를 배경으로 할 때 더 잘 드러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것은 '곰이 산을 넘어오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샌가 영화화도 되었다는 이 작품은, 치매를 앓는 아내를 요양소에 맡긴 한 남자의 심리를 그려냅니다. 젊을 적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아내에게 지고 있는 죄책감과 더불어 병이 깊어지는 아내의 행동으로 무력감과 배신감과 서글픔을 느끼게 되는 모습이 묵직하고 담담하게 묘사되고 있는 것이죠. 작품의 말미에서 그가 내리는 선택은 그것의 논리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선택을 하게 만드는 마음의 복잡다단함 때문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기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맞을 결정입니다만 그것에 대해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지요... 묵직하게 여러가지 화두를 던져주는 작품이었네요.(다만 이리저리 궁리해봐도 '곰이 산을 넘어오다'라는 제목의 의미는 알 도리가 없네요. 좀 더 고민을 해봐야 되려나요?)



단편 특유의 속도감을 느끼기 힘든 느긋한 전개나 수많은 심리묘사와 부거운 분위기 때문에, 묘사보다 서사를 좋아하는 분들게는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서사에 대한 흥미를 조금씩 잃어가는 저에게는 소박하고 잔잔하게 그려내는 여러 인물들의 모습은 반갑고 친밀하게만 느껴지더군요. 가브리엘 루아의 소설은 제가 너무 좋아했고 지금도 사랑하는 작품들인데요, 이제 그 옆에 앨리스 먼로의 소설을 꽂아두려 합니다. 가끔씩 빼들고 다시 음미할 수 있는 작가를 만나게 된 듯하여 기쁘기만 하네요.

덧. 번역은 흐름상 크게 걸리는 부분은 없었습니다만, 의역을 하면서 의미가 변질되었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부분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의 색깔을 생각해보면 그런 의역은 아쉽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네요. 출간된지 제법 시간이 흐른 책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번 기회에 손봐서 개정하여 다시 낸다면 좋지 않을까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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