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절제 사회 - 유혹 과잉 시대 어떻게 욕망에 대항할 것인가
대니얼 액스트 지음, 구계원 옮김 / 민음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깔끔하고 하얀 것이 마음에 드는 표지의 책 '자기 절제 사회'입니다. 뭔가 민음사스러운 표지기도 하고 말이죠. 그런 좋은 첫인상 못지않게 엄청난 두께가 주는 압박감도 제법이었습니다만.. 제목은 자기개발서를 연상시키는데 두께는 인문서의 향기를 풍겨서 어느 쪽일까 궁금하기도 하더군요. '절제'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 주제인 것이 사실이지요.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화두가 될만한 것이 현대는 과거 어떤 시대보다도 욕망을 긍정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철학에서도 과거에는 욕망이 일방적인 부정의 대상이었다면 현재는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되고요. 주제가 어떻든 일단 저자가 저널리스트이다 보니 아주 딱딱한 책은 아니겠구나 기대하며 읽기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딴소리가 되겠습니다만, 서양권에서는 저널리스트가 쓴 글이 상당히 많이 출간되고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일도 잦은 것 같습니다. 전문성과 필력이 균형을 이루기에 용이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보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들이 쓴 글이 어떤 주제에서든 유머를 잊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좋아하게 됩니다. 전통이라는 것이 무서운 것이 글의 유머러스함에서도 일종의 서양문학사적 특색이 드러난다는 점인데요, 앨런 포 식의 유머가 현대 저널리스트의 글에서도 효과적으로 활용되는 것을 보면 신기할 정도입니다. 아무튼 이 책 역시 머릿말에서부터 그러한 유머감각이 드러나는데요, 책 전체에 그런 유머가 계속 깔리기 때문에 읽는 맛이 제법 쏠쏠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구성에서 보자면, 이 책은 주제를 개념 정의부터 분석, 논증 순으로 발전시키는 논문식의 전문서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오히려 아웃복서처럼 다양한 측면에서 욕망과 절제라는 주제를 치고 빠지는 식으로 열거하고 있다고 하겠는데요, 그러다보니 소단원이 많은 컬럼모음집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자칫 산만해지기 쉬운 위험이 있고 실제 부분적으로 산만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만, 철저하게 결론을 확정지어두고 글을 엮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주제로의 수렴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감입니다. 저처럼 가볍게 읽어나가는 독자에게는 오히려 읽기 편해서 반기게 되는 구성이기도 하고요.

내용으로 들어가보면, 일반적으로 절제는 욕망의 반의어이자 의지의 유의어로 인식되는데요, 저자는 근본적인 부분에서는 이러한 전통적 인식에 공감하면서도 여러 다양한 인문, 자연과학적 지식을 끌어들여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측면에서 산업화 사회는 능력적으로든 구조적으로든 소비를 긍정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왔습니다. 그리고 뇌과학이나 진화생물학의 연구결과는 인간이 욕망에 저항하도록 진화하지 않았음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고요. 철학 역시 인간의 자유의지를 완벽하게 증명해내지 못하고 있는 실태입니다. 특히 절제의 가장 큰 장애물로써 인간의 미래예지능력을 들고 있는 단락들이 크게 공감되더군요. 미래예지능력이 흥미로운 것은 이 능력이 인간에게 알려주는 것이 미래의 불확실성이라는 역설 때문입니다. 때문에 인간은 즉각적인 보상을 먼 미래의 보상보다 조금 높게 평가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터무니없을 정도로 높이 평가하게 됩니다. 진화의 측면에서도 지극히 합리적인 이러한 가치평가가 현대인에게는 맹독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고요.



흥미로운 예화가 풍부한 것이 저에게는 가장 반갑게 느껴졌던 이 책의 장점이었습니다. 뇌생리학적으로 전두엽 피질이 덜 발달한 청소년이 보다 충동적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 단원이라던지, 일반적으로 욕망의 해방자로 인식되는 프로이트가 '본능이 있는 곳에 자아가 있게 하라'는 말로써 중용을 강조했음을 짚어준 단원이 기억에 남는데요. 가장 가장 인상적인 것은 프랑켄슈타인의 우화였습니다. 자신을 괴물의 방에 가두어달라고 단호하게 부탁했으나 실제로 방에 갖힌 후에는 온갖 말로 그곳을 벗어나려고 드는 프랑켄슈타인의 모습, 책의 내용의 절반 이상을 담아내는 예화가 아닌가해요. 정말 소설가의 촌철살인에는 혀를 휘두르게 된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회문제를 개인에게 돌리는 것이 보수적인 성향이고 사회적 구조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진보적인 성향이라고 거칠게 정의한다면 저자의 결론은 보수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인간 행동의 대부분을 자발성에 무게중심을 두어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강박이나 중독을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근본적으로는 개인의 선택과 의지가 더 중요하며 그것이 전자를 압도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자기개발서와 일맥상통하는 면도 있고요. 예컨대 저자가 중요한 롤모델로 제시하여 책의 곳곳에 등장하는 것이 오디세우스인데요, 그리스 철학이 강조하는 절제의 미덕을 가지고 있되 유연한 균형감각으로 그것을 실천해낸 인물로 오디세우스를 들고 있는 것이지요. 욕망을 통제하는 것이 어렵더라도 스스로의 선호를 결정하여 그에 맞는 행동을 모색하는 것이 가능함을 알려주는 것이 오디세우스의 여정이고 말입니다. 실천론으로 들어가자면 상식으로 향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책의 마지막에 실린 의지 근육 기르기 등의 방법론은 예상을 하고 있었음에도 다소 마이너스 요소로 느껴지더군요.

무난한 결론의 심심함에도 불구하고, 욕망과 의지의 작동원리를 다양한 측면에서 펼쳐내주어 독자가 그것을 흥미롭게 곱씹어볼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읽는 재미가 훨씬 큰 책이었습니다. 한번쯤 욕망, 의지, 절제 등의 주제를 머릿속에서 줄세워보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 분이라면 이 책을 권해드리에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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