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드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김현철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뜬금없습니다만 제목과 표지를 보고 떠오른 것은 '공작왕'이라는 오래된 만화였습니다. 아실만한 분은 아실 유명한 만화입니다만 명작이라고 평가받은 것은 1부였고 2부 이후로는 망작에 가까웠더랬지요. 그런데 2부의 소재 중 하나가 멕시코의 전설 속 신인 케찰코아틀이었습니다. 공작왕의 작가는 발상 면에서는 늘 기발하기 그지없는데요, 그 에피소드에서는 케찰코아틀을 흡혈귀들의 원조신으로 설정하고 있었지요. 만화를 보면서도 남미 특유의 이미지가 흡혈귀와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이 작품의 표지가 그때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네요. 관심 있으신 분은 한번쯤 보셔도?



아무튼 카를로스 푸엔테스라는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르케스나 보르헤스로 대표되는 남미의 환상문학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작품도 접해본 적이 있었습니다만, 아직까지 내공이 부족한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이 작가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작년에 타계하셨다고 하니 뭔가 만나자마자 이별이라는 느낌도 듭니다만... 제목으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의 멕시코식 변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구조 면에서 상당부분 비슷한데요, 평범한 삶을 살아가며 일상에 익숙했던 변호사 '이브'가 비일상과 공포의 화신이라고 할 '블라드'와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세계 자체가 전복되는 극단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브가 사는 세계의 표상으로써 그가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등장하고 블라드가 그들을 빼앗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순문학 작품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의외랄정도로 공포소설의 공식에도 충실해서 읽는 내내 서늘함을 느끼게 되더군요. 모호하면서도 섬뜩한 결말 역시 그렇고 말이죠.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극도로 가다듬은 듯한 작가의 묘사력입니다. 중편 정도의 아주 얇은 소설입니다만 첫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독특한 문체가 강렬하게 다가오더군요. 순식간에 기승전결을 타고 오릅니다만 그 과정이 매끄럽게 느껴지는 것은 확실히 작가의 필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봅니다.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가가 펼쳐내는 주제는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는 편입니다. 멕시코라는 배경에 대한 지식이 전무해서인지, 너무나도 쉽게 파괴되는 일상의 불안정함이라는 전통 공포소설의 주제의식 외에는 그닥 다가오는 것이 없더라고요. 책을 후다닥 읽고 한번 읽고 나면 왠만해서는 다시 보지 않는 편이라 놓친 부분이 많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어쨌든 그런 제게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어질만한 매력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제 취향상 장편이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 소설을 다시 보는 것도 보는 것이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 중 장편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어지기도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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