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머즈 하이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박정임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64'를 흥미있게 읽었던지라 요코야마 히데오라는 작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더군요. 독특한 스캔들도 있었고 건강도 좋지 않아 10년간 작품활동을 쉬다가 낸 작품이 '64'였다고 하는데요, 제 코드에 상당히 잘 맞아떨어지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휴식기 전에 냈던 작품이 이 작품 '클라이머즈 하이'고요. '클라이머즈 하이'는 '러너스 하이'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은데요, 등산의 알레고리를 차용하여 생의 지향성과 인간 욕망의 문제를 고민해보고 있는 것이죠.



이 작품은 일단 실제 일어났던 일본 최악의 항공기 추락 사고를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그 결과 작품의 현실성을 담보하기에 더욱 유리하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요, 요코야마 히데오라는 작가가 가장 뛰어난 점이 무엇인가 생각해볼 때 이러한 소재 선택은 당연한 선택이자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어느 지방 신문의 중견기자인 유키 가즈마사인데요, 동료와 함께 악마의 산이라 불리는 '쓰이타테이와'에 오르기로 한 날, 542명의 사상자를 낳은 최악의 비행기 사고가 발생하면서 갑작스레 총괄 데스크를 떠맡게 됩니다. 정신없는 보도전쟁의 와중에 당연히 등산 약속은 취소됩니다만, 함께 등반을 약속했던 그 동료가 식물인간이 되어 병원에 누워있다는 소식을 받게 되는 것이죠. 이야기의 주축은 항공기 사고 보도 쪽이겠습니다만 작품의 주제의식은 등반 사고 쪽에서 응축되어 표출되게 되는데요, 이런 식의 구조도 꽤 인상적이더군요. 비행기 사고를 전후한 일본의 사회 상황, 언론사간의 치열한 경쟁, 보도 윤리의 문제는 물론 기자 세대 간의 주도권 다툼, 비열함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욕망의 추구에 더하여 가족간의 책임감과 이해의 문제까지 날카롭게 묘사해내고 있습니다. 그러한 묘사의 와중에 인물의 감정선을 그려내다가 절묘하게 폭발시키는 능력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64'에서도 느꼈던 부분입니다만 '클라이머즈 하이'를 통해 확신을 가지게 되는 능력이네요.



출간 순과 역순으로 읽어가다보니 뒤늦게 실망을 느낀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클라이머즈 하이'와 '64'는 기본 골격이 너무 유사하더군요. 일단 주인공의 위치 설정인데요, 권력의 변경에 놓여있기에 고통을 받게 되지만, 그런만큼 선명하게 권력의 암투 양상을 그려내고 문제를 적확하게 짚어낼 수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아주 흡사합니다. 동일하게 자녀와의 갈등 문제가 덧붙여진 것도 눈에 밣히고요. 주인공의 적인 것처럼 보였으나 나름의 사명감과 목적의식에 따라 움직였음이 밝혀지는, 다른 시각이 있음을 상징하는 라이벌(?)의 설정도 유사합니다. 물론 같은 구조를 사용했다고 해도 이 작품의 장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주제의 면에서도 같은 만큼 다른 부분이 존재합니다만 다소의 아쉬움은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64'는 분명 10년이나 쉬면서 갈고 닦은 작품이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고 하기엔 오히려 과거의 답습이 아니었나 생각된다는 것이죠.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읽어갔고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여운의 정서까지 너무 유사한 것 아닌가 불평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것! 이 소설이 재밌는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첫장을 펴고 나면 마지막 장까지 책장이 술술술 넘어가거든요. 제 취향에 딱 맞는 성격이라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역시 작가의 상황설정과 감정묘사능력은 비범한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미스터리 소설은 아닙니다만 그만큼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 작품이니만큼 코드가 맞는 분이라면 분명 아주 재밌게 읽으실 수 있는 소설이 아닐가 생각됩니다. 여운에 잠겨 이런저런 고민도 해볼 수 있는 작품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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