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인데 어두운 방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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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들의 성실함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명 작가들조차도 매년 한두 편의 작품을 꼬박꼬박 출간해내거든요. 물론 작품의 유형이나 분량에 힘입은 바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것을 감안해도 이런 창작력은 신기하게 느껴지네요. 그리고 일본이 그만큼의 출간량을 흡수할 수 있는 시장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놀랍게 느껴지고요. 아무튼 에쿠니 가오리 역시 올해 들어서만도 두 권의 책을 출간했군요.(물론 일본에서 출간된 시기는 다소 다르겠습니다만 작품을 내는 간격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에쿠니 가오리를 처음 만난 것은 '냉정과 열정 사이'였으니 벌써 10년이 넘었는데요, 한때는 푹 빠져서 엄청나게 읽어댔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 작품의 전성기는 4, 5년 전이 아니었던가 생각되네요. 그 후의 작품은 동일한 세계관과 동일한 감성을 틀 삼아 붕어빵 찍듯 찍어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읽게 되는 것은 그녀가 만들어낸 세계의 마력 때문입니다. 현실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질감을 상기시키는 에쿠니 월드는 살고 있는 사람도 신비롭습니다. 한없이 감정적인 듯 하면서도 한순간 냉정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 서로의 욕망을 섬세하게 충돌시켜 가고 있는 것이죠. 사실 치정극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이들의 행동은 작가의 색으로 덧입혀진 세계 안에서 독자에게 알 수 없는 위안을 주는 것이죠. 아, 이런 것도 삶의 한 모습이 되는구나 생각하게 만든다고 할까요?



이번 작품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입니다. 사실 초반부는 기존의 작품과는 좀 다른 인상을 주기는 합니다. 교외에서 여유있게 살아가는 교양인의 모습이 다소 풍자적인 느낌의 어투로 그려져서 '어라?'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특히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의 경직된 높임말로 이야기를 서술해낸 탓에 그런 인상이 강조되고요. 하지만 조금만 읽어가다보면 그닥 달라진 것은 없음을 알게 됩니다. 미묘하게 한곳만 바라보는 비현실적인 캐릭터, 동화처럼 꾸며졌지만 허무함이 느껴지는 삶의 모습들, 욕망의 정체를 깨닫고 일순간 한없이 담대해져서 어이없을 정도로 단호하게 선택을 내리는 결말 등은 에쿠니 소설의 전형을 잘 보여줍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연상하셨겠습니다만 이 작품은 입센의 '인형의 집'을 에쿠니 식으로 변주한 것이 아닌지 생각하게 되요. 확실히 에쿠니적인 조형미는 '인형의 집' 컨셉과 궁합이 잘 맞지 않나 생각되는데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주제의식이야 아무려면 어떻겠습니까? 에쿠니 팬이라면 그런 것을 기대하고 그녀의 작품을 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저 읽는 순간 그녀가 만든 허상의 모습을 향유하면 족한 것이겠지요. 이번 작품 역시 읽는 순간을 즐기며 읽어갈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이미 에쿠니와 합이 맞았던 독자라면 이 소설 역시 아쉬움 없이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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