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수기 - 세상 끝에 선 남자 아시아 문학선 5
주톈원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시아 문학선이 순식간에 5권까지 출간되었네요. 지난 번에 읽었던 '아시아의 고아'는 살짝 제 취향이 아니었던지라 이번에는 어떨까 궁금했는데요, 여류 작가의 작품이며 세기말적인 색깔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라는 소개에 눈길이 갔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예측과 맞아떨어진 부분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었는데요, 스토리텔링보다는 감정의 묘사에 주목하여 섬세한 그림을 그려내는 작품이라는 점은 예상대로였습니다만, 놀라울 정도로 지적이고 다양한 내용이 담겨있다는 점은 예상 이상이었습니다.



'황인수기'라는 제목에서 '황인'이라는 말은 동성애자를 뜻한다고 합니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황량해지고 황폐해진 세기말의 인간상을 뜻한다고 해설하고 있는데요, 이 작품의 서술자는 섬세하고 지적이지만 세계로부터 고립되고자 하는 동성애자이거든요. 이 작품의 실마리와 마무리는 서술자인 샤오가 어릴 적의 친구이자 애정의 대상인 아야오가 에이즈로 죽음을 맞게 되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으로 엮어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야오의 첫만남으로 인한 정체성의 자각, 연인과의 만남으로 인한 기쁨과 절망, 그리고 그 속에서 억압되는 욕망과 사회와의 충돌 등을 회상하며 복잡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중시하는 것이 스토리라인이 아니라 샤오의 사고과정과 고뇌인 점이 독특한데요, 푸코나 쿤데라, 혹은 알랭 드 보통을 연상하게 되는 면이 있었습니다. 대만, 중국, 일본, 이집트, 인도 등의 설화와 문화, 철학이 동시에 등장하고 석가모니, 레비 스트로스, 미셸 푸코, 미시아 유키오의 가치관이 연이어 베어듭니다. 심지어 마이클 잭슨과 맥컬리 컬킨이 스쳐가기도 할 정도입니다. 아무튼 육체와 정신의 충돌에서 출발하여 육체의 무게를 깊이있게 고민한다는 점에서 현대 소설의 특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만 꽤 복잡한 소설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작가의 머릿말을 참고하지 않더라도 세기말적인 특성을 모두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지금의 눈으로 보자면 화자를 동성애자로 설정한 것이 오히려 넘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이 작품이 20년 전에 쓰여졌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이러한 설정이 상당히 강렬한 기호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보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화자의 우울함과 고통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내용보다는 섬세한 심리 묘사가 흥미로웠습니다. 아마도 역자가 꽤나 고생을 했으리라 예상되는데요, 그분의 고생이 보람이 있어서(?) 날카롭고 이질적인 묘사가 중첩되는 소설을 좋아하는 저로써는 줄곧 흥미를 잃지 않고 읽어갈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죽음과 상실의 주제는 아무래도 책을 한번 더 읽어보며 소화해가야 할 것 같지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