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빨간 책방' 팟캐스트를 듣다 보니 진행자분께서 지나가듯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유명하지 않은데도 의외로 많이 팔린 소설이 있고 작가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음에도 예상 이상으로 안 읽히는 소설이 있다고요. 그러면서 예를 든 것이 폴 오스터였습니다. 물론 한국에 한정하여 든 예이겠습니다만 제 주변을 둘러 봐도 폴 오스터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많은데 실제로 그의 소설을 읽어본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사실 비슷한 인상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얼마나 인기를 끄는가 생각해보면 더욱 의외의 일이기도 하겠네요. 아무튼 이번 작품인 '선셋 파크' 역시 폴 오스터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묻어나는 작품입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여 개개인의 심리를 혼란스럽고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지요. 다만 환상적인 느낌은 일체 제거하고 지극히 현실적으로 현실을 그려가는 것은 기존의 작품에 비해 다른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소설은 마일스 헬러로 시작하여 빙, 앨런, 앨리스 등 선셋 파크에 살게 된 4명의 젊은이의 독백이 이어지고, 거기에 헬러의 부모의 자화상이 더해집니다. 이들은 각자 나름의 상처를 안고 힘들게 삶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중심이 되는 마일스 헬러의 경우, 의붓형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 부모와의 단절로 이어져 명문대생에서 떠돌이로 전락한 젊은이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의 가족과 문제가 생긴 차에 친구 빙의 초청을 받고 뉴욕으로 돌아와 다른 3명의 젊은이와 지내게 된 곳이 선셋 파크인데요, 실은 버려진 건물에 불법거주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불완전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4명의 젊은이를 모아두었으니 소통을 통한 성장기를 기대하게 됩니다만, 전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들 각자가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독백으로 풀어내며 고민하고 아파하는 모습이 주로 그려지지요. 요새 힐링이 대세라서인지 이 소설이 힐링 소설로 소개되는 것을 보았는데요, 결말만 보자면 그런 인상도 받을 수 있을 듯 합니다. 하지만 작가의 나레이션 방식을 보면 이 소설을 읽고 치유의 느낌을 받는 분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죠... 사람의 마음이 가지는 섬세함과 복잡함을 특유의 언어로 그려내는 솜씨에서 쾌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폴 오스터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소설의 와중에 문학, 연극, 영화와 야구가 자주 인용되던 것이 인상적이었는데요, 특히 운명의 장난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삶을 산 야구선수들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실제 인물들이 소설같은 사건에 상처입는 모습과 소설 속의 다양한 인물들이 자기 나름의 아픔을 부둥켜안고 싸우는 모습이 등치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삶의 아이러니와 맞닥드렸을 때 누군가는 그것에 상처입고 파멸해가고 누군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수용하고 삶을 이어가는 것을 보노라면, 삶에 진리가 있다면 그 진리는 각자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누구에게나 삶은 아픔을 동반하게 마련입니다만 그런 아픔에도 생의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이 폴 오스터가 던지는 화두가 아닐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