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게 나를 맡기다 - 영혼을 어루만지는 그림
함정임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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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베네치아로 갔다'라는 책을 통해서 처음 만났던 함정임 님과 재회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책의 제목은 '그림에게 나를 맡기다'입니다. '영혼을 어루만지는 그림'이라는 부제를 참조하지 않더라도 이 책이 요새 유행하고 있는 '힐링'에 컨셉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는데요, 바로 표지의 그림 때문이지요. 보기만 해도 행복이 느껴지는 풍만하고 건강한 두 여인이 밝게 웃고 있는 그림인데요, 그림체가 익숙하다 했더니 존 싱어 사전트의 작품이었습니다. 이처럼 이 책에는 다양한 명화와 더불어 그에 대한 저자의 단상이 차곡차곡 쌓여있습니다.



구성은 비슷한 컨셉의 다른 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만 간간히 실려있는 시들이 일단 눈길을 끕니다. 본래 감성적인 그림들이 저자의 감각적인 시와 어울려 굉장히 섬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함정임 님의 문투가 원래 조금 과장이 있는 편인데 이런 형식을 택하다 보니 간간히 오버스럽다, 오그라든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난해한 현대 회화보다는 익숙하고 편안한 고전적 작품 위주로 소개되어 그림을 '즐기기'에 편하도록 짜여진 것도 마음에 듭니다. 특히 맘에 든 글로는 표지의 그림을 소재로 한 '행복의 기술' 편을 꼽고 싶습니다.

"...두 여인이 뿜어내는 섬세한 아름다움과 화사한 활력이 봄빛 속에 충만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고 행복하다. 한편의 그림이 주는 최고의 선물은 미적 충만감을 넘어서는 행복감이다. ... 아아, 이제야 조금 보인다. 사전트가 소개한 두 여인의 초상은 행복의 절정을 넘어선 황혼의 빛이 아닌가. ... 행복은 어느 순간 슬픈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오래가지는 않는다."

영원히 가치가 빛바래지 않는 것이 명화입니다만 그런 그림들을 감상하던 황홀함의 와중에 한순간 덧없음과 부질없음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름답기 때문에 덧없을 운명인 건지, 아니면 덧없기에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지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그림 뿐만이 아니지요. 삶의 아이러니를 감각적으로 그려내는 저자의 섬세한 글이 마음에 남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화가 터너의 그림도 세 편이나 소개되어 왠지 더욱 반갑기도 했고요, 베르메르, 쿠르베의 정적인 그림과 더욱 정적인 글도 행복하게 보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아무리 비슷한 책들이 많아도 신간이 나올 때마다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는 컨셉의 책들이 있습니다. 제게는 예술 분야의 에세이가 그런 책 중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이 책은 제게 있어 너무 어려운 현대 회화를 다루기보다 대중들에게 익숙한 낭만 이후의 작품들을 다루고 있어서 읽기가 한결 즐거웠고요. 함정임 님은 지금도 일 년에 두 번씩 예술여행을 떠날 만큼 감성적이면서도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신지라 곧 신작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차기작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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