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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통각하
배명훈 지음, 이강훈 그림 / 북하우스 / 2012년 10월
배명훈 님의 '타워'를 아주 좋게 읽었습니다. 타워라는 공간 안에 멋지게 현실세계의 모습을 녹여내어 비틀고 꺾어내리는 작가의 솜씨가 빼어난 작품이었죠. 우리나라에서는 풍자소설을 찾기가 쉽지 않은 편인지라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 같은데요, 이 작품 '총통각하'는 그런 작가와 다시 만나게 된 두번째 작품입니다. 제목부터가 '작정했다'는 냄새가 나는데요, '각하'를 '나의 뮤즈'로 표현한 표지의 소개글이 그런 인상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죠. '각하'의 임기가 다 끝나고 곧 선거철이 되는 시기에 출간된다는 것이 조금 신경쓰이기는 합니다만...
10편의 단편소설을 모은 이 작품집을 읽어가다보면 '각하'를 뮤즈로 표현한 소개가 아주 적절해 보입니다. 작가는 각하와 각하의 정부의 대해서 직접적으로 '까는' 방식을 택하지 않습니다. 각하의 실용주의와 과거로의 회귀는 작가에게 권력과 정치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볼 계기를 주었던 것이겠지요. 때문에 오히려 각하의 '통치'는 실체라기보다는 하나의 '표상'처럼 그려집니다. 표지 뒷편에 문학평론가 허윤진 님께서 '배명훈은 악인과의 투쟁이 아닌, 악과의 투쟁을 다룸으로써 SF의 가장 아름다운 영역을 수호했다'고 이 작품을 평하고 계신데요, 저로써는 이 이상 세련되고 날카롭게 이 소설의 본질을 평할 능력이 없군요.
확실히 작가의 상상력은 '타워'에 비해 조금도 뒤쳐지지 않습니다. 말그대로 '낙하산' 부대로 말장난을 치기도 하고, 고양이를 숭배하는 나라와 소를 숭배하는 나라보다 못한 '사람'을 숭배하는 나라를 소개하기도 합니다. 유령을 만들어 두들겨대고 있는 웃기는 정치판에 대해 비웃어주기도 하고요. 풍자의 날카로움과 반전의 기발함에 대해서는 아주 만족스러웠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가끔가다 지나치게 친절하게 설명을 하는 바람에 독자에게서 여백을 채우는 즐거움을 느낄 기회를 빼앗는 점은 아쉽더군요. 대체로 반전에 충실하게 단선적인 이야기 구조를 활용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여백까지 없애버리게 되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굳이 다시 읽어볼 맛이 나지 않으니까요. 소위 말하는 장르소설의 특징이 엿보인다고 하면 지나친 이야기려나요...
작가는 이야기 속에서 '권력'은 '권력'이 거기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힘임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하'의 힘은 '각하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 창출해내는 것이고, 따라서 그것이 실체인만큼 허상이기도 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힘이 사람들의 믿음에 귀속된다면, 바른 신념이 그릇된 힘을 지울 수 있다는 것도 당연한 결론일 것입니다. 선거철을 앞두고 가슴 속에 담아두어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