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올리버 색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2년 9월
장바구니담기



제목을 기가 막히게 뽑는 작가 올리버 색스의 신작입니다. '모자를 아내로 착각한 남자'는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에게 권하기 딱 좋을만큼 내용이 잘 정리되고 전개가 흥미진진한 입문서였는데요, 기가 막힌 필력을 보여주어 후속작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번 작의 제목 역시 번역에 힘입은 바가 커 보입니다만 어쨌든 눈길을 끄는데 성공하고 있네요. 침대에서 다리를 줍다니, 도대체 무슨 내용일지 상상하기도 어려운 제목입니다.



펴든 책의 머릿말은 다행히 저자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알려줍니다. 늘 환자를 대하던 그가 불의의 사고를 겪으면서 환자의 처지가 됩니다. 벼랑에서 떨어져 그 기능을 상실한 그의 다리는 저자에게 마치 완전히 낯선 '대상'처럼 느껴졌던 것이죠. 이러한 체험은 그에게 신체 이미지와 신체 자아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입니다. 이 책은 그가 부상을 입는 과정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부상이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는 물론, 환자의 입장에서 의사와 간호사를 대하게 되면서 새롭게 깨닫게 점이나 부상이 치료되는 과정에서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고찰 끝에 그가 깨달은 신경의학의 문제점과 미래의 신경의학에 대한 비전에 이르기까지 서술되고 있습니다.



아주 다양한 관점에서 아주 다양한 내용을 복합적인 방식으로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가닥을 잡기 쉽지 않은 책이라고 하겠는데요, 기본적으로 의학보다는 철학에 중심을 두고 있다고 보입니다. 그럼에도 대화장면이 잦고 서사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에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수기라기보다 소설처럼 느껴진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묘사가 너무 세밀하고 정교하여 기억에 의존하여 쓰여진 것이라기보다 기억에 상상력으로 살을 붙여 서술한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고를 당한 후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는 장면이라던가, 치료 과정에서 의식이 혼란에 빠지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을 보면. 실제로는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된 일임에도. 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온갖 단상들을 복합적으로 서술함으로써 독자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죠. 알고는 있었지만 저자의 필력이 기대를 뛰어넘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아무튼 종합하자면 요새 유행이 된 통섭적 발상의 소설을 떠올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상과 다소 다른 내용의 책이었고 워낙에 다양한 내용을 아우르는 책인지라 만만치 않았다는 느낌입니다. 단순히 읽어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읽는 동안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양한 생각을 정리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 정확할지도 모르겠군요. 사실 저도 부상을 입고 신체에 대한 이질성을 느낀 적이 있으며 실제로 대다수의 환자가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만, 그런 체험을 이런 식으로 명확하게 그려내고 복합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나 '소설가는 일반인들이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잡아내는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확실히 독특한 책은 독자도 독특한 체험을 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독서경험을 하나 더 더했다고 하겠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