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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법은 없다 - 범죄 유발성 형법과 법의 유통 권력자들
박영규 외 지음 / 꿈결 / 2012년 10월
어느 나라든 법과 관련된 농담은 좋은 것이 없죠. 미국처럼 법의 역사가 길고 생활 밀착도가 높은 나라에서도 법에 대한 시니컬한 농담이 많은 판이니, 우리나라에서야 말할 것 없을 것입니다. 50년 동안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뜯어고친 덕에 헌법이 누더기가 된 우리나라니 법에 대한 신뢰도가 형편없는 것도 당연하지요. 그래도 결국 법을 알아야하는 것은 힘이 없는 이, 법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인 것도 사실입니다. 강자에게는 법이 필요없으나 약자에게는 법이 필요하니 말이죠.
법률후진국이라는 말을 들어도 할말 없을 우리나라입니다만 의외로 법현실에 대해 비판하는 책이 많지 않다는 점은 항상 아쉽습니다. 정치비판서가 서점에 잔뜩 쌓여있는 것과 대조적이죠. 정치에 대한 관심은 높습니다만 법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럴 때 법에 몸담은 사람이 법현실을 비판하는 책을 내놓으니 더욱 반갑게 느껴집니다. 형법교수인 저자가 30년의 경험에서 보고 들은 것에 기반하여 조목조목 문제점을 짚어내는 것이 이 책이지요.
책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입법상의 문제점, 법 집행상의 문제점을 차례로 지적하고 마지막으로 대중들의 법에 대한 무관심을 짚어봅니다. 이론적인 내용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실제로는 수기를 읽는 듯한 느낌의 책이었습니다. 30년간 겪어온 법조인으로써의 경험에 기반하여 저자가 체감한 문제점들을 써내려가고 있기 때문이죠. 국회 법제실의 태만을 비판하는 첫글부터 인상적이었는데요, 법이 정치에 휘둘리는 탓에 특별법을 남발하는 실태에 대한 글이나 선거철이 되면 쏟아져나오는 포퓰리즘 법안에 대한 비판 글이 기억에 남습니다.
근래 아청법 때문에 말이 많은데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으로 기억될만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점입니다만 단순히 취지만 좋다고 좋은 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제에서 고도의 정교성을 요구하는 것은 그래야만 그나마 현실적인 파급효과를 예상하고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청법 개정은 비전문가의 눈에도 보일만큼 어설픈 구석이 많음에도 뚝딱 국회를 통과하고 말았는데요, 지금은 열심히 집행중인 모양입니다만 이런 무리수가 오래 갈 리 없지요. 결국 언제 그랬냐는 듯 흐지부지되고 한국법제사에 또 하나의 수치를 더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지 않을까 예상되네요. 아직까지 갈길은 먼 듯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