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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ㅣ 김봉석의 하드보일드 소설 탐험 1
김봉석 지음 / 예담 / 2012년 8월
작가의 머릿말이 기억에 남는군요. 이 책의 저자인 김봉석 님은 홈즈와 뤼팽을 만나고 이어 아가사 크리스티, 엘러리 퀸을 읽어간 끝에 동서추리문고를 읽게 되면서 하드보일드에 입문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기억에 남는 것은 저 역시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시대(?)에 추리소설을 접하게 되는 사람은 대부분 저 코스를 밟아나가게 마련일 것입니다. (특히 동서추리문고, 왠지 캬~ 그립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마성의 시리즈였죠.) 다만 저의 경우 딱히 하드보일드 소설이 뭔지 생각해볼 여지도 없이 이런저런 작품 몇 개를 읽어본 것이 다입니다만 저자분께서는 제대로 파고드신 것일테고요.
저같은 이를 위해서 머릿말에는 친절하게 하드보일드의 정의가 실려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절망이 인간에 대한 불신과 회의로 이어졌고 이러한 경향이 소설계에서는 하드보일드 소설의 출현으로 표출되었다는 것이죠. 고전적 하드보일드 소설의 경우 일상의 사건을 풀어나가던 탐정이 결국 거대한 사회악과 마주치게 되고 결국 좌절 내지 파멸하는 결말로 이어진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비극성이 세계의 진실로써 독자들을 매혹하는 것이겠지요.
책은 미국의 하드보일드를 비롯하여 엔터테인먼트 소설, 사회파 미스테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의 하드보일드 소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책에 실린 작품은 총 38개의 소설인데요, 각각의 소설이 가지는 특성에 주목하여 저자의 생각을 짧게 펼쳐낸다는 점에서 컬럼집에 가깝다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줄거리가 별로 소개되고 있지 않은 만큼, 아무래도 읽어본 작품에 대한 소개에 눈이 가게 되더군요. 그 외의 소설에 대해서는 '이 작품은 이런 색으로 이런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구나. 내 취향인데?' 싶은 정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되네요.
하드보일드 하면 아무래도 미국을 떠올리게 되는데 소개된 작품의 반 정도는 일본 작품입니다. 미스터리 분야에 있어서 일본 소설이 뛰어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던 바입니다만 그래도 다소 놀랍네요. 물론 우리나라에 출판되는 일본 소설이 워낙 많으니 독자층을 반영하여 선정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가네시로 가즈키, 쿄고쿠 나츠히코, 가이도 다케루 등의 소설이 하드보일드로 소개된 것은 상당히 의외였어요. 하드보일드의 범위(?)는 생각 이상으로 넓은가봅니다. 그나저나 그럴거면 한국 소설도 한편 정도는 끼워주실 것이지 하는 잡생각도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