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하는 벽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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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조정래 님의 작품이 꾸준히 재출간되고 있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읽어왔는데요, 조정래 님의 긴 호흡에 어울리는 장편소설이 대부분이었죠.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외면하는 벽]은 드물게도 단편집입니다. 게다가 상당히 초기의 작품으로 보이더군요. 여러모로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읽어보니 이 책은 그간 만났던 작가님의 작품과 상당히 느낌이 다릅니다. 조정래 님의 작품은 보통 아주 질박하고 철저히 현실에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단편들 중에는 의외로 관념적인 것들이 있더군요. 문체 역시 보통 보던 토속적인 구어체 못지 않게 가다듬어진 문어체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시도를 할 수 있는 것이 단편의 특징이었던 때문일까요, 아니면 선생님이 보다 젊은 시절 다양한 길을 더듬던 시기였던 때문일까요? 작가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된 것 같아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더 재미있게 읽어 나갈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형식적인 차이와 달리 주제의식은 크게 다르지 않게 다가옵니다. 현대문명에서의 인간소외, 도시문명의 가혹함, 거대권력에 의한 개인의 파멸 등 그간 다루어오던 주제들이 단편 곳곳에 배어있습니다. 시대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재에도 역시 유효한 힘을 가지고 다가온다는 건 아직까지도 우리가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이겠지요..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책을 보는 것은 익숙하지만 태만해지지는 않은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듭니다. 수십년에 이르러 작품을 써왔지만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온 조정래 작가가 그 길을 더듬어 온 과정을 살피는 것은 흥미롭고도 재밌는 여정입니다. 신작 못지 않게 과거의 작품을 반추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임을 생각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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