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퇴화 보고서 - 진화를 멈춘 수컷의 비밀
피터 매캘리스터 지음, 이은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4월
품절



남성으로서 보자마자 왠지 열받는 제목의 책 '남성 퇴화 보고서'입니다. 안그래도 작아지는 아버지, 위축되는 남성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는 사회분위기인데요, 아주 대놓고 자극적은 제목을 사용했네요. 본래 선정적인 제목의 책은 왠만하면 피식 웃고 무시해버리는 편인데요, 이 책은 사회학 분야의 책이 아니라 자연과학 분야의 책인 듯 하여 왠지 관심이 가더라고요. 최근 X염색체에 비해서 Y염색체가 진화상의 열위에 있다는 내용의 글을 꽤 흥미롭게 읽은 뒤인지라 눈길이 갔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제목보다 더 독한 책의 첫글.. "당신은 못난 남자다. 이상"이라니... 화가 난다기 보다 걱정이 되더군요. 진화의 선형 위에서 뒷줄에 놓인 것이 앞줄에 놓인 것보다 뛰어나다는 식의 말은 과학자라면 절대 해서는 안될 무식한 이야기니까요. 이상하다 싶어 저자를 확인해보니 생물학자가 아닌 인류학자였습니다. 즉 이 책은 생물학 도서가 아닌 인류학 도서였던 것입니다! 이러면 이해가 되지요. 인류학에서는 분명 발전에 대해서 논하니까 말입니다. 퇴화라는 제목만 보고 생물학으로 착각한 저의 실수였군요.



당연히 책의 전개 역시 철저히 비교인류학적인 방식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힘, 허영심, 싸움, 운동능력, 미모, 육아(!), 성적능력(!!) 등과 같은 남성의 대표적인 속성들을 주제로 하여 과거 다양한 시대, 다양한 지역의 남성들과 현대의 남성들을 비교하고 있는 것이지요. 책의 컨셉이 그래서인지 예시로 제시되는 글도 상당히 자극적이네요. 어조 자체도 상당히 코믹한지라 술술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다양한 예를 제시하는 방식이고 복잡한 이론이나 논리는 전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부담없고 빠르게 읽어 나갈 수 있습니다.



상당히 페미니즘스러운 결론을 향할 거라는 예상을 하실 수도 있겠는데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굳이 남성의 사례만을 들고 있는 것 뿐, 이 책의 논지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거든요. 또 가장 특수한 예만 찾아내어 현대에 비교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화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부분도 적지 않고요. 실은 저자도 과거에서 현재로의 변화 추세를 잘남에서 못남의 변화로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닌 것 같더군요. 그저 이런 속성들을 남성이 가져야할 덕목으로 추구하는 현대 남성, 혹은 현대 사회를 부분적으로 비웃어주고 있고요, 간간히 도전과 자극이 사라짐으로써 열화되어가는 남성의 신체능력에 대해 학자적 아쉬움(?)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죠. 책의 뒷부분에 이르러서는 후자가 훨씬 강하게 드러나서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마초적 냄새가 살살 나거든요. 아무튼 우울한 척 하는 책입니다만 실상은 가볍게 읽어주면 되는 책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문화상을 즐기는 기분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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