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 박범신 논산일기
박범신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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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 님의 소설은 자주 접했습니다만 수기는 처음이네요. 워낙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시기 때문에 청년작가라고 불리우는 박범신 님인데요, 최근 [은교]가 영화화되면서 다시 한번 이목을 끌기도 하셨죠. 사실 영화는 볼까말까 고민하고 있는데요, 책의 넓음은 영화화되면 결국 단편화되기 마련인지라 아무리 영화와 책의 차이점에 주목하더라도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아무튼 가끔 소설가들이 쓴 수기를 보면 문학을 하는 사람은 눈이 다르다는 것, 그러한 눈의 차이가 좋은 작품을 낳는 뿌리가 된다는 점을 깨닫게 되는 재미가 있더군요.



책은 작가님이 고향인 논산으로 내려가 전원생활을 하던 시기의 기록입니다. 어찌보면 변덕이라 할 수 있는 심정으로, 하지만 밑바닥에는 생에 하나의 쉼표를 찍기 위해서 가족을 이끌고 고향으로 내려가신 것이죠. 그러한 심정 때문일까요?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책을 뒤덮고 있는 분위기는 고즈넉함, 한편으로는 쓸쓸함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왜 고향에 내려와야 했던가 그 '답'을 내리기 위한 사색이 계속되지요.




언제나 그렇듯 작가 특유의 간결하고 쿨한 말투로 아내의 이야기, 자식의 이야기, 친구의 이야기, 직업의 이야기, 전원생활의 이야기, 책의 이야기, 우연한 만남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일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지라 아주 많은 이야기가 담길 수 있었던 것 같네요. 그러한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러한 풍부함 때문에 이러한 책은 읽지 않으면 내용은 전달할 수 있을 지언정 분위기는 전달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내용보다는 인상적인 문구가 그 분위기를 전달하기에 적절할 것 같기도 합니다.

"땅거미 진다. 불도 안 켜고 앉아 저물어가는 호수 내다보면서, '시체놀이' 하면서, 내 감각의 안테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예민하게 열려 있다. 습관적 일상을 사느라 감각이 닫혀 있어 느끼지 못하지만, 알고 보면 생은 신비로 가득 차 있다. 그 신비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다. 기억의 우물은 마를 새 없고, 그런데도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새로운, 또 새로운 시간만을 살도록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책의 뒷편에는 출판 기념회에서 저자가 했던 연설이 실려있습니다. 작가 박범신이 어떠한 지향성을 가지고 작품을 써나가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창이네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그다운 수기가 아니었던가 생각해봅니다. 일기를 옮긴 것임에도 너무 딱딱 맞아떨어지는 사진은 저자분께서 그때그때 찍은 사진인 듯 한데요, 수준급의 솜씨시네요. 아무튼 사진과 글이 잘 어우려져 읽어나가는 재미가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읽었던 하루키의 잡문집에 이어 작가와 더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책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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