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0년만에 작가 자신의 손으로 장편소설로 개작된 '비탈진 음지'입니다. 아마도 작가 자신이 아쉬워하던 바를 충족시키기에 좋은 때라 생각했던 것인지, '황토'를 장편으로 개작한 것에 이어 이 소설도 개작하여 새로 낸 것이지요. 디자인이나 분량도 비슷하고 개인의 눈을 빌려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사회상을 그려냈다는 점도 공통적입니다. 물론 차이점도 있습니다. '황토'가 일제시기부터 해방 후까지 한 여인의 소위 '뒤웅박 팔자'를 통해 굴곡진 근현대사를 개인의 눈에 담아냈다면, '비탈진 음지'는 도시화가 진행되던 때 삶의 터전을 잃고 상경한 한 일가의 가장의 눈을 통하여 근대화 속에서 파괴되어야했던 여린 삶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공인 복천 영감은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무작정 상경'의 대표적인 표본인 인물입니다. 아내의 병수발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아니더라도 결국 농촌에서 살기 어려워지면 도시로 상경하게 되는 것이 산업화의 '자연스런' 과정이지요. 우리는 경제시간에 이러한 빈민들이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여 경제성장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무미건조하게 배웁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 한 마디는 그 아래에 깔아뭉개진, 최소한의 의식주도 보장받지 못한 많은 이들의 피눈물을 담아내지는 못합니다. 늘 약자의 눈으로 사회를 그려낸 조정래 님의 작품답게 이 소설 역시 그들의 눈물을 한탄하며 그려낸 인생사라 할 것입니다.




사실 저만해도 조정래 님의 소설을 읽으며 진정한 공감을 할 수 있는 세대는 아닐 것입니다. 이 소설을 읽고 느끼는 가슴아픔이 슬픈 영화를 보았을 때나 어느 빈국의 소년이 굶주림으로 죽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그것과 크게 다르다고는 못할 것이니까요. 그럼에도 조정래 님의 소설이 그려낸 사회상이 현재의 그것에서 분리될 수는 없는 것임은 되새기게 됩니다. 현재의 사회가 앞세대의 그것에 빚지고 있다는 자명한 사실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그것보다 어떤 사회도 본질적인 역학관계에 있어서 소설 속 사회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실제로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항상 같은 이야기를 같은 시야로 그려내는 조정래 님의 소설이 도대체 언제까지 유효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의 소설이 '소설'이 될 수 있는 사회는 정말 꿈일 뿐일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책장을 덮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