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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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라는 소설은 37년 전에 중편소설로 출간된 것이었다고 합니다. 본래 장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상황상 중편으로 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고 그러한 아쉬움을 풀고자 이번에 장편소설로 개작하였다는군요. 37년전이면 작가가 30대의 문턱에 들어섰을 즈음이려나요? 아직 젊었던 시절, 작가의 생각과 지향점을 되짚어볼 수 있는 소설이라 하겠네요.



소설은 일제 말부터 한국전쟁을 걸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굴곡진 삶을 살아온 한 여성의 삶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실 플롯 자체는 단순하고 전형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시대의 물결에 무력하게 휩쓸릴 수밖에 없는 한 연약한 여인의 소위 '뒤웅박 팔자'를 그리고 있는 것이지요. 17세의 어린 나이에는 가족을 지키기 위에 일본인 순사의 노리개가 되어 아들을 하나 얻습니다. 곧이어 광복이 되자 홀로 된 여인은 과거를 숨기고 한 남자와 결혼하여 딸을 낳습니다만 이 남자는 공산당원이었고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홀로 북으로 떠나버리죠. 그 후 첩자혐의로 곤욕을 치르던 중 만나게 된 한 미군과의 사이에서 다시 한번 아들을 낳게 됩니다. 이 미군 역시 떠나버리고요. 여인은 힘들게 힘들게 세 아이들을 홀로 키워냈지만 장성한 자식들은 그러한 어머니의 눈물과 아픔을 깨닫기에는 자신들의 슬픔에만 눈멀어있을 따름이고요.



화자가 여인이니만큼 이 소설에는 여성의 눈으로 보는 당대의 현실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만큼 어찌보면 순진하면서 소박하지만 그만큼 마음을 찌르는 진실을 드러내주지요. '그거 한마디로 하자면 남자들이 못나서 그리 된 거 아니니? 여자들은 다 집에 처박혀 있었고, 나라는 남자들이 다스렸으니까'라는 말이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역사를 겪었음에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멍청한 남자들이 아직도 많고 많으니 스스로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는 일이네요.



중간중간 드러나는 작가의 시각은 비록 등장인물의 눈을 빌렸습니다만 젊은 시절의 순수함과 열기가 묻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남자들이 먼 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대신 국내에서 왜놈들을 하나씩 죽이고 자신도 죽어버린다면 결국 독립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은 너무 순수하면서도 잔혹하여 마음을 복잡하게 합니다. 한편으로는 치기일 뿐이라 생각하면서도 만약 모든 사람이 지금보다 조금 더 서로를 믿을 수 있다면 그런 치기도 아름다운 꿈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작품은 주인공 점례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역사나 국가의 모습은 단편적이고 주관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른 소설에서도 그랬듯이 이러한 서술 방식은 한편으로는 더욱 진실함을 더해주지요. 볼 수 있는 범위가 극히 좁은 주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민중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으로 역사의 흐름이 규정되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작가의 일관된 역사관과 관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박한 가치를 믿고 그에 기대 우직하게 살아 생을 이어가는 것이 민중의 힘일 것입니다. 그러한 민중의 힘에 대해 믿는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가 그려내는 그러한 삶의 모습은 분명 마음을 울리는 구석이 있습니다. 오래 전 소설의 개작이기 때문일까요? 다소 구태의연하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고 투박하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작가의 진심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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