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 인생도처유상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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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만으로 반가워지는 책입니다. 아름다운 글씨체로 세로로 적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는 9글자가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군요.

처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만난 것이 대학교 입학 직전의 겨울방학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입학이 결정되고 한가로운 와중에 이런 저런 책을 들추어보던 때이죠.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회자될 정도로 이 책의 반향은 굉장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군요.

성급한 일반화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민족의식이 강해선지 한국인은 자부심이 강한 편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최초, 1등에 대한 집착도 강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는 목소리가 작아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들꽃처럼 소박하고 앙증맞은(?) 문화재들은 교과서 속 부연 설명이 없이는 초라하게만 보였죠. 특히 중국이나 인도 등 강대국 혹은 전 강대국의 대규모 유물들에 비교해보면 부끄럽게만 여겨졌고요. 그런데 이 책은 우리의 문화가 가진 조화와 균형의 미학을 너무나도 우아하고 기품있게 담아내는데 성공했지요. 유머와 촌철살인의 날카로움이 곁들어진 작가의 필력은 글 읽는 재미를 배가해주었고요. 그러한 기억 속에서 10여년만에 돌아온 이 시리즈는 더욱 반갑게 느껴질 따름입니다.










표지를 넘기자마자 등장하는 수묵화가 인상적입니다. 여백의 미를 담뿍 담은 그림 한점을 실음으로써 내지 한장을 예술작품으로 끌어올리네요. 작은 아이디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러한 세심함과 엄정함이 책이 가지는 격을 높이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이 시리즈가 주장해온 주제와도 잘 부합하는 점이겠고요.







처음 등장하는 것은 경복궁입니다. 우리의 법궁이라 하겠습니다만 영욕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물이기도 하겠습니다. 오랜만에 돌아와 정면승부를 한다는 느낌의 꼭지였습니다. 4개의 단원을 할당하고 있는만큼 분량도 가장 많고요. 예전 답사기 2권에서 석굴암을 샅샅이 파들어가며 한국적 미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노력했던 작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가장 많은 이들이 들어보았음직한 경복궁이니만큼 친밀감도 크지만, 한편으로 '이런 것까지 보는 것이 유흥준의 눈인가.. 역시 아는만큼 보이는구나'하는 반성이 앞섭니다.








제가 처음 경복궁을 갔을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중의 하나가 굴뚝입니다. 정교하면서도 우아하여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었는데요, 그 굴뚝에 또다른 비밀이 숨어있었네요. 도대체 이와 같은 장인의 치밀함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자연미를 살리기 위해 역설적으로 치열하게 계산을 해야했던 것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조화와 아름다움은 대충대충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닌 게지요.







처음 경복궁에 갔을 때 근정전이나 교태전 등의 상대적인 소박함(?)에 대비되어 더욱 인상적이었던 경회루입니다. 사실 우리의 유물 중에 이 정도로 대놓고 화려한 것도 드물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 당시에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아쉬움을 느꼈어야 했는데요, 아니나다를까 문화재청장이었을 당시, 경회루 출입을 허가하게 되는 과정에 대한 저자의 자기자랑(?)이 눈에 띄는군요^^ 사실 이 책 곳곳에는 청장 재직시의 업적에 대한 소개가 적지 않은데요, 당시 저자가 이런저런 일로 인해 적지않게 고생해야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약간 과하다 싶은 이런 과시들도 그리 거슬리지는 않습니다. 분명 당시의 입장에서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 혹은 말했지만 알아주지 않았던 사실들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경복궁에 이어서는 순천 선암사, 달성 도동서원, 거창과 합천, 부여, 논산, 보령의 문화유산들이 등장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 불멸의 주제는 말할 것도 없고, '인생도처유상수'라는 6권의 주제도 계속 떠올리게 되더군요. 특히 많은 분들이 좋아하실 촌철살인의 에피소드들이 이번 권에서도 많이 등장하는데요, 이 에피소드들 중 상당수가 '인생도처유상수'라는 주제를 상기시킵니다. 선암사 편에서 등장하는 비엔날레와 관련된 에피소드에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더군요.





거창 합천 편에서는 종갓집을 떠받들고 있는 종부들의 고충이 인상적입니다. 개인적으로 혈통과 가문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함을 넘어서서 우습게까지 보입니다만, 민족적 정체성으로써의 종가가 가지는 가치는 부정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그 종가를 지켜온 것은 긴 수염을 늘어느리고 에헴거렸던 남정네들이 아니라 묵묵히 고된 일을 떠맡아온 사진 속의 여인네들, 어머니들, 딸들이었을 것입니다.








거창 합천 편에는 6권의 표지로 쓰인 쌍사자석등도 등장합니다만 저는 단계마을의 돌담길에 대한 소개가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뒤이어 부여 논산 보령 편에서 전국 돌담길 8컷이 소개되는데요, 사진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포근해지는 느낌입니다. 점점 더 사라져갈 수밖에 없는 것들이기에 더욱 소중히 아끼고 지켜야하는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독자에 대한 서비스컷처럼 느껴져서 더욱 정겨웠던 대조사의 꽃사슴 사진도 인상적입니다. 이 녀석은 우연히 산사에 내려웠다 카메라에 찍힌 것이 아니라 절에서 키워지고 있는 사슴이랍니다. 이름이 무려 "해탈"이라네요. 이 사슴 덕에 대조사가 녹야원을 연상케 한다는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봅니다. 대조사가 담아내는 백제의 우아미와 신비로움이 배가되는 느낌이랄까요...







6권에는 특이하게도 부록이 있더군요. 바로 답사노트인데요, 6권뿐 아니라 출간된 전 시리즈에 소개되었던 명소들을 계절별로 찾아가기 좋게 배열한 다음 지도를 덧붙여둔 것입니다. 아무리 이 책이 뛰어나다 해도 현장이 가진 모든 매력을 담아내기는 역부족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부록을 보노라면 저자가 독자에게 당장 가방을 둘러메고 나서라 하고 등을 툭 떠미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더군요. 이번 시리즈에서 경복궁 편을 보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역시 직접 가본 것이 아니면 애정도 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봄이 다 가기 전에 6권과 함께 1~3권을 다시 배낭에 담아두고 답사를 떠나야할까 봅니다. 이제 청장직도 내려두셨으니 집필에 전념하실 것이라고 기대해도 되겠지요? 조만간 출간된다는 7권 이후로도 시리즈가 죽 이어진다면 답사해야할 곳은 수다하겠네요. 마음이 설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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